본보 박재분 명예기자 뉴질랜드 3주 탐방

오클랜드 국립도서관 잔디광장에서 포즈를 취한 필자의 모습.
오클랜드 국립도서관 잔디광장에서 포즈를 취한 필자의 모습.
여행은 늘 새로운 것에 대한 동경을 요구하며 풍부한 상상력을 갖게 한다.
일상생활에 지친 삶에서 탈출할 때 가장 떠오르는 것이 여행이고 보면 우리들 삶속에서 여행은 늘 유혹의 손짓으로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이에 본보에서는 박재분 명예기자가 3주동안 뉴질랜드를 탐방하면서 느꼈던 감회를 간접적으로나마 체득할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탐방기를 소개해 보았다.
-편집자 주-



여행이란 끝없는 동경의 발로일까요.
나는 지금 이역만리 타국에서 몽상가가 된 듯한 기분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오클랜드의 중심가를 조금 벗어난 아들네 집에 머물면서, 여행도 다니고 산책을 나가기도 합니다.

지금도 근처 호숫가에서, 물살을 가르며 건너편 기슭으로 저어가던 야생 오리 한 무리와, 뒤뚱거리며 나를 따라다니는 놈들을 이끌고 한바퀴 돈 뒤 이층 테라스에 섰습니다.

마치 아득한 상고시대의 적막과 나른한 평화가 공존하듯, 눈 맛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이 곳. 미풍에 흔들리는 건너 편 숲의 감미로운 율동과 황금측백나무가 불꽃처럼 하늘로 치달리는 정원을 바라보며 엉뚱하게도 해바라기로 유명한 네델란드의 화가 반 고흐를 생각합니다.

그가 그린 유명한 ‘해바라기` 보다 오히려 ‘측백나무`에서 더 잘 나타낸 역동성이 바로 이런 태고 적 분위기의 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 듯 떠올라서입니다.

오늘로 이 곳에 온 지 13일.
그 간 우리를 위해 3주 동안의 휴가를 낸 아들 내외와 함께 다닌, 국립박물관과 해양수족관, 스카이타워, 로토루아의 간헐천과 마오리족의 민속공연, 그리고 하버 브릿지와 원트리 힐. 이 모든 것들이 어떠한 미사여여구와 찬사를 퍼부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뛰어난 자연을 배경으로 극적인 아름다움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길가엔 꽃으로 넘쳐나고,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울창한 삼림과 공원, 한마디로 이 나라는 거대한 하나의 공원입니다.

□ 아름다운 노후의 삶

인위적인 힘에 의해 자연환경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우리나라를 두고 아들이 그러더군요.
‘한국도 이제는 칼을 버려야 합니다.`

사람들의 주거형태는 각각 자유스럽게 개방된 듯 하면서도 철저한 독립성을 띠고 있으며, 별장처럼 은밀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어서 일까요.

고향 집 사립문을 밀 듯 고즈넉한 처마 밑으로 슬그머니 들어서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특히 이 나라는 법정 휴가가 3주 동안인데다 여름철이라 그런지 거리에 나가보면 자동차의 뒷 꽁무니에 매달거나, 지붕 위에 보트를 싣고 바다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쇼핑을 즐기는 사람이나 그러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대부분 노인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이 곳은 노후의 삶을 아름답게 꾸려갈 여건과, 늙고 병들어도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게끔 복지정책이 잘 되어 있습니다.

TV만 틀면 접하게 되는 온갖 비리와 시끄러운 우리나라의 정치 싸움. 생활에서 어쩔 수 없이 부대끼던 마음의 상처들이 이 곳에 와서는 저절로 치유가 되어 잠시나마 정서적인 안정을 누리게 된 것은 아마, 배타적인 영토가 되어가고 있는 한국보다 월등히, 사람을 끄는 흡인력이 정말 대단해서 일겁니다.

이 곳을 다녀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민을 꿈꾸게 된다는 나라, 복지정책뿐만 아니라 교육환경이 뛰어나고, 그리고 환경오염이 없는 나라임에 틀림없습니다.

실로 이 곳에선 사방 백 리가 한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고, 며칠 동안 옷을 갈아입지 않아도 될 만큼 때가 타지 않습니다.
어느 곳을 가도 쓰레기가 눈에 띄지 않고 도로는 막힘 없이 쭉쭉 빠지는 것도 마냥 가슴 속을 트이게 합니다.

며칠 전 해양박물관을 갔을 때입니다.
입구에 들어서니 나그네의 향수를 자극하는 바그너의 가곡 ‘스와니강`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울컥 향수가 밀려오더군요. 그런데 이국에서 느끼는 향수가 묘하게도 또 다른 이국에 대한 특이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더군요.
그것이 아마 이방인에게 또 다른 동경과 함께 객수를 안겨주는 매력이 아닐까요.

□ 편리한 옷차림·검소한 생활

발길이 닫는 어느 곳이나 눌러 싸인 푸른 숲과 정원. 하루종일 잔디만 밟고 다닐 수 있을 만큼 드넓고 부드러운 잔디밭. 꽃들은 어찌나 그리 많은지요.

집집마다 잘 가꿔진 정원에는 장미와 수국, 칸나는 물론 능소화, 백합, 부겐베리아와 갖가지 꽃들이 시울을 붉히듯 아름답게 피어있고, 길가엔 노란 씀바귀와 마타리가 끝없는 장관을 연출하며 물결을 이루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번화가로 유명한 오클랜드 퀸 스트리트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대부분 검소한데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란한 화장과 현란한 옷차림을 한 사람은 찾아볼 수 없고 헐렁한 티셔츠에 간편한 바지차림, 표정들은 모두 온화하고 따뜻합니다.
차도에는 물론 불법 주차한 차량이 전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집집마다 자동 개폐기 시설이 되어있는 차고와, 공공 건물마다 잘 설계된 주차시설, 너절한 간판이 하나도 없는 것이 또한 주위의 환경을 깔끔하게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다만 이 곳에서도 빈부의 격차는 있어, 담배꽁초를 줍느라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니는 사람들과 남루한 차림의 거리의 악사가 연민을 불러일으킵니다.(담배값이 우리나라의 7배)

아직도 대중교통의 필요성을 못 느껴 택시도 많지 않고, 건설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지하철은 한 눈에 보아도 사람들의 안전에 역점을 둔, 특수설계로 이루어진 것임을 짐작케 합니다. 구멍이 숭숭 뚫린 강철판 같은 천장을 이고, 사이를 띠어 또다시 지붕을 이은 것이 이중설계의 방식을 택한 것 같군요.

또한 주변 어디에도 화재를 유발할 수 있는 인화물질이나 잇속을 노린 상업성 가판대 하나 없이 말끔한 모습을 보면서 대구의 지하철 참사가 생각나 잠시 묵념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부러운 것은 생산적인 요소가 풍부하게 갖추어진 천연 자원입니다.

국토의 70%가 산으로, 그것도 대부분 악산이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비해 이곳은 모두 평지이거나 둥글고 완만한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하여 끝없이 방대한 초지를 조성할 수 있었고 따라서 목축업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산이 내린 천혜의 조건이 아닌지요.

가도가도 끝없이 펼쳐진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말과 양, 젖소들은 그대로 한 폭의 아름다운 정물입니다.
이 곳에서 대략 210㎞정도 떨어진 로토루아는 그나마 유일하게 산의 면모를 지닌 곳인데 지열지대로 유명한 관광명소로서 주변 일대가 온통 유황 냄새로 가득합니다.

이곳에는 수 십 개의 간헐천과 진흙연못이 있고, 세계적으로 이름 난 포후투 간헐천에선, 지상에서 30m까지 솟아오르는 수중기 기둥을 하루에 10∼20번씩 분출합니다.
이 진흙연못은 산성가스와 스팀이 바위에서 장석이라 부르는 광물질을 녹여 카올린(kaolin)이라는 진흙을 만들어 형성된 것이라고 하며 온도는 약 90∼95℃라고 합니다.

끝없는 진화를 거듭하기 위한 자연의 몸부림 같기도 하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욕망의 분출 같은. 계곡 여기저기 뜨거운 물과 수증기가 자욱하게 솟아오르고, 화장품의 원료가 되어 주고 있는 진흙이 부글부글 끓는 모습을 보면서 감탄과 부러움, 탄식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이 미로속 같은 계곡을 돌면서도 마음은 늘 자식을 끼고 돌 듯 한국이 생각나고 안타까움만 쌓입니다.

□ 이민 피해 우려

그 많은 산 중 어디 한 곳쯤, 생산성을 지닌 이런 명소가 있다면 관광자원으로서 얻는 부가가치가 엄청나게 클텐데..
할 수만 있다면 이 나라의 작은 일부분만이라도 한국에 옮겨놓고 싶을 만큼 탐나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핵발전소를 지어야 할 것인가 서서히 고민 중인 나라, 지금까지는 땅에서 올라오는 지열을 이용해 전력을 가동시키고 공급했지만 인구가 늘다 보니 수요도 따라서 늘기 때문입니다.

그 원인 중 하나가 이민 때문이라 합니다. 세계 여러 곳에서 이 곳으로 이민 오려는 사람들이 급증하다 보니 그 폐해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범죄도 늘고 환경오염도 우려되고해서 그 예방책으로 이민정책을 강화해 지금은 거의 문이 닫혔다고 할 만큼 문턱이 높아졌습니다.

우리 남한의 2.7 배나 큰 나라에다 인구 밀도가 서울의 인구 3분의 1밖에 안 되는 나라에서 내다보는 미래의 안목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이제 며칠 후엔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두고 온 것은 모두가 그립듯이, 집으로 돌아가면 이 곳이 몹시 그리울 것 같습니다.

어디를 가나 온갖 식물과 꽃, 나무 한 그루도 존중하듯 아름드리로 가꾸어 놓고 무료로 개방한 수십 만평의 공원과, 마을 가까이 내려와 유난히 크게 반짝이던 밤하늘의 별, 하룻밤 신세 진 인연으로, 헤어지는 걸 몹시도 섭섭해 하며 뜨겁게 포옹하던 로토루아 숙소의 아주머니.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우리에게 세심한 배려와 지극한 정성으로 대해 준 며느리와 아들이.

<기획탐방기/ 박재분 명예기자 뉴질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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