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순 수필가

 
 

‘리추얼’, 요즘 소위 말하는 뜨는 단어다. 반복된 습관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의식처럼 굳어져 나오는 행동이나 생각을 말한다.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쓸 수 있을 때는 그 기세를 몰아 많이 써버린다든지, 써지지 않을 때는 쉰다든지 하면 규칙이 깨지기 때문에 철저하게 지키려고 한다. 나는 타임카드를 찍듯이 하루에 거의 정확하게 20매를 쓴다.’라고 말한다. 그는 글쓰기 뿐 아니라 생활에서도 ‘리추얼’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엄격한 식단과 운동이다. 자신의 건강을 지키면서하는 글쓰기의 리추얼은 몇 십년동안 꾸준하게 작품을 내놓는 힘은 아닐까.

가만 생각해 보니 나에게도 습관처럼 하는 일이 있다. 잠들기 전 책을 읽는 일이다. 읽고 싶은 책이 생길 때마다 사놓곤 했다. 책은 점점 쌓여만 가는데도 시간 탓 만 하며 차일피일 미루는 날이 많았다. 안 되겠다 싶어 제일 잘 지킬 시간을 생각해 보니 잠들기 전일 듯 했다. 처음에는 5페이지만 읽고 잤다. 몇 달을 그렇게 하다 10페이지로 늘렸고 1년쯤 지났을 때부터는 20페이지를 읽고 잤다. 그렇게 잠들기 전 책읽기를 하는 것이 10년을 넘었다. 쌓인 책들이 점점 낮아질 때 그 뿌듯함이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이른 아침, 마당을 둘러보는 일도 습관 중에 하나다. 마당에 딸린 화단의 꽃들과 아침 인사를 나누고 나면 다음은 뒤란의 작은 텃밭으로 향한다. 요즘은 장날 사다놓은 고추, 호박, 토마토, 오이, 가지, 상추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제는 제법 땅내를 맡아서인지 줄기도 튼튼하고 잎도 초록이 짙어졌다. 오이가 처음부터 실한 건 아니었다. 모종을 처음 사왔을 때는 추웠던지 시들해지더니 누렇게 죽고 말았다. 그 뒤로 또 사다 싶었지만 잘 살지를 못하더니 세 번 째에 서야 자리를 잡았다. 제일 먼저 시장에서 선을 보이는 상추모도 몇 번 만에야 성공을 했다. 처음에는 비오는 날이었다. 농막을 지어놓고 농사를 짓는 언니의 밭에서 상추모를 뽑아다 심었다. 매일 아침 상추모를 들여다보았지만 키도 크지 않을뿐더러 시들시들했다. 물도 주고 흙도 북돋아 주었지만 끝내 살지를 못했다. 그냥 막 뽑다보니 뿌리에는 흙이 없었다. 그러니 살 리 만무했다. 그 후 시장에서 두 번이나 사다 싶어야 했다.

초록 생명 뿐 아니라 울안의 동물들을 돌보는 일도 나에게는 하루를 시작하는 일 중 하나이다. 농장에서 데려온 눈이 예쁜 겁쟁이 청이, 누군가 우리 집 골목에 버리고 가 며칠을 동네 골목을 헤매던 몽이, 두 녀석은 어엿한 우리 가족이다. 또 현관문이 열리면 어떻게 알고 오는지 꼬리를 치켜들고 반갑다고 몸을 부비는 고양이 랑이와 아롱이도 가족이다. 요즘은 연못 위를 가로 질러 집을 지어 놓은 거미에게도 매일 아침 인사를 나눈다. 연못가에 심어 놓은 소나무와 발코니를 지지대 삼아 거미는 거대한 집을 지어 놓고 사냥을 한다. 어제는 날이 좋았는지 거미줄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곤충 찌꺼기가 많이도 보인다. 며칠 전 비가 오는 날 아침에는 여기저기 찢겨서 어찌 사냥을 할까 싶었다. 비가 개자 거미는 무슨 힘이 그리도 좋은지 단단한 집을 또 선보였다. 그 작은 몸을 보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꾸준함, 모든 시작은 작았다. 나는 어쩌면 사소했을 그 이유가 나중에는 아주 대단한 일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쓰는 20매의 글쓰기 자체는 아주 적은 20매다. 하지만 적은 20매가 일 년이라는 시간을 거치자 장편의 소설이 되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나의 하루 20페이지의 책읽기는 일 년이 지나자 몇 십 권의 책읽기가 되었다. 아침마다 만나는 작은 생명들과의 인사가 시간이 흐르자 관심이 되고 소중함으로 자리 잡았다.

날마다 조금씩 천천히 모아지는 아주 사소한 움직임이었다. 사소한 일상이 소중한 순간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거창한 계획도 행동도 아니다. 다만 꾸준히 이어지는 관심과 그것을 지키기 위한 마음뿐이었다. ‘리추얼’, 그것은 나의 일상을 대단하게 만들어 준 사소함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제는 너무도 소중한 책읽기와 작은 생명들과의 만남이 나에게는 너무도 멋진 ‘리추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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