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환 강동대 사회복지과 교수

 
 

속담이나 고사성어(故事成語)를 보면 역설적인 표현들이 많다. 말이 달아났다고 불행인 줄 알았는데, 새끼와 함께 돌아왔다는 새옹지마(塞翁之馬), 불행인 줄 알았는데 행운이었다는 전화위복(轉禍爲福) 등이 대표적인 말들이다. 이외에도 역설적 상황은 많을 듯하다. 개인의 삶을 보아도 그렇고 한 국가의 역사를 보아도 불행이 결과적으로 행운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홍민표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역사에 그렇게 해박(該博)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 흥미롭기도 하였지만, 그가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알고는 놀랐다. 역사 관련 동영상 매체에서 소개된 내용을 들으며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를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 사람은 대한민국 건국 전후 남로당 서울시당위원장을 지낸 거물 공산주의자였다.

당초 1948년 5.10선거에 참여를 주장하였으나 공산당 지도부에 의해 의견이 거부되었다고 한다. 그 후 수류탄 1만 개로 서울을 일대 혼란에 빠뜨리라는 지령(指令)을 이행하는 데 실패하였고, 북한으로 소환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북한행을 거부하고 자수(自首)를 선택하였다.

1949년 9월 서울 한복판을 대낮에 걸어가는 대담한 행동을 통해 검거된 이후, 당시 공산주의자 체포를 총지휘하던 오제도 검사의 청렴함에 감복하여 전향을 결심하였다고 한다.

본인뿐만 아니라 서울시당 간부들을 모아놓고 자신이 공산주의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1시간 동안 연설하며 함께 할 것을 역설하였다. 그들도 역시 눈물과 함께 그동안 헛된 믿음을 버렸다고 한다.

홍민표가 자수한 이후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전향 열풍이 불었다. 1949년 연말을 전후하여 총 33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공산주의자들이 그들의 사상을 버렸다. 전향을 거부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신고를 통해 검거할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

박헌영이 북한으로 도망간 이후 남로당 총책(總責)이라는 김삼룡, 이주하 그리고 전설적인 여간첩으로 이름난 김수임과 당시 제헌의회 국회의원 등이 검거됨으로써 실질적으로 남한 내에 공산주의자들과 조직이 와해(瓦解)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어떤 의미에서 홍민표라는 사람은 동료와 사상을 배신한 자가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용감히 수정할 수 있었던 6.25전쟁의 진정한 숨은 공로자가 아닐 수 없다. 33만 명의 공산주의자들이 전향하지 않았다면 6.25사변에서 그들이 무엇을 하였을지 뻔한 노릇이다. 미국을 위시한 유엔군의 도움도 받아보지 못하고 대한민국은 주저앉았을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를 보면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고사성어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 많다. 홍민표의 전향(轉向)도 그렇고 해방 전후 6.25사변까지 수많은 불행한 역사들이 결국은 오늘날의 우리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1946년 대구폭동, 1948년 여순반란사건 그리고 4.3제주사건 등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촉발되었고, 이로 인해 수많은 양민들을 비롯한 동족들이 희생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이들 사건을 통해 내부가 일정 부분 사상적으로 정비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국군의 대표적인 반란 사건인 여순반란은 군대 내에 공산주의자들을 척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주었다. 건국 전후의 혼란은 결과적으로 6.25전쟁에서 공산주의자들을 물리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특히 3년의 동족상잔을 통해 대한민국은 공산주의와 완전히 결별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해방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77%라는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공산주의를 지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우리 국민들은 미몽(迷夢)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수 십 년의 동서냉전 시대에 국민의 마음을 통일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

반공(反共)이라는 어설픈 낡은 이념논쟁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대의 수많은 불행과 아픔이 오늘날 우리를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천우신조(天佑神助)라는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애국가의 한 소절이 생각나는 ‘호국의 달’ 6월이다. 수많은 역경과 아픔을 슬기롭게 극복하신 선대(先代)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