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영섭 인성교육칼럼니스트

 
 

6월 호국보훈의 달이 오면 우리는 짙어지는 녹음을 바라보며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으로 나라를 지키다가 가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고 되새기게 된다.

나라와 겨레의 독립과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귀한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 이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의 삶과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고마움을 잊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6월 25일 6. 25전쟁일 에는 경건한 마음으로 그날을 생각하며 피를 흘리며 산화한 수많은 전쟁영웅들을 추모하며 보내야 한다.

6. 25전쟁하면 생각나는 애틋한 노래가 바로 비목이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의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 ‘비목(碑木)’은 죽은 이의 신원 따위를 새겨 무덤 앞에 세우는 나무로 만든 비(碑)를 뜻한다. 하지만 이 노랫말 속에 나오는 비목은 6.25전쟁 당시 산화한 무명용사의 돌무덤 앞에 세워진 전사자에 대한 어떤 기록도 없는 나무등컬일뿐이다.

이 노래가 탄생하게 된 것은 작사자 한명희씨가 1964년 학군사관 임관 후 7사단 백암산 계곡 부근 GOP에서 복무했을 당시 막사 주변 빈터에 야채를 심기 위해 조금만 삽질하면 여기저기서 사람 뼈가 나오고 해골이 나왔다.

순찰할 때면 계곡과 능선 곳곳에 썩어빠진 탄피 조각이며 녹슨 철모 등이 나뒹굴고 있었다. 어느 날 잡초 우거진 양지바른 곳에 흙에 가려진 돌무더기 하나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그것은 결코 절로 쌓인 돌이 아니라 뜨거운 전우가 묻어 준 무명용사의 유택이었음을 직감했다.

그는 제대 후 동양방송(TBC)에서 음악부 PD로 근무해왔는데, 1968년 어느 날 통금 때문에 귀가하지 못하고 숙직실에서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때 과거 군 시절을 회고하다 양지쪽 산모퉁이에 조성된 백암산 전투 당시 숨져간 무명용사들의 돌무덤과 철모가 올려진 비목(碑木)이 문득 떠올라 그들을 기리고자 이 시를 썼다고 한다.

그 뒤 작곡가 장일남이 애절한 음률을 덧붙여 1969년 가곡으로 발표했고, 국내외에서 널리 불리며 사랑받고 있다. 지금도 제7보병사단 백암 OP 정상부에 이 가사가 새겨진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평화의 댐 한켠에도 비목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이런 공원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

반면에 6월 25일이면 국립묘지에서 아들을 나라에 바친 백발 할머니가 차디찬 묘지석을 자식 얼굴쓰다듬듯 가슴에 박힌 대못을 움켜잡고 오열하고 있는 장면에 죄송할 뿐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운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목숨이 바쳐졌는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우리 민족이 나라를 잃고 일제치하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 조국광복을 위해 수많은 애국선열들께서 형극의 길을 걸으며 헌신하여 겨레의 앞길을 밝혀주셨다. 또한 6·25전쟁으로 대한민국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오직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 이러한 선열들의 희생이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적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초석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 체제아래서 평화와 이만큼 번영을 누리는 것도 모두가 애국선열들의 희생의 토대 위에서 이룩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시점에서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조국광복을 위해 순국한 애국선열이나 나라를 지키다 장렬히 산화한 호국영령과 부상당하거나 공을 세운 국가유공자들에 대한 존경심과 사회적 관심도가 점점 퇴색되어 가는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비목의 작사가 한명희님이 당부하신 말을 가슴깊이 새겨보자.

‘짙푸른 6월의 산하에 비통이 흐르고 전장의 폐허 속에서 젊음을 불사른 한 많은 백골들이 아직도 긴 밤을 오열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사람들, 겉으로는 호국영령을 외쳐대면서도 속으로는 사리사욕에만 눈이 먼 가련한 사람들, 아니 국립묘지의 묘비를 얼싸안고 통곡하는 혈육의 정을 모르는 비정한 사람들, 숱한 전장의 고혼들이 지켜낸 착하디 착한 이웃들을 개인의 종처럼 학대하는 모질디 모진 사람들, 숱한 젊음의 희생 아닌 것이 없는 순연한 청춘들의 육신이 썩은 부토 위에 살면서도 아직껏 호국의 영령 앞에 민주, 정의, 평화의 깃발 한번 바쳐보지 못한 저주받을 못난 인간들이여, 제발 그대만은 비목을 부르지 말아 다오. 죽은 놈만 억울하다고 포연에 휩싸여간 젊은 영령들이 진노하기 전에!’ 우리는 동족상잔의 6·25전쟁은 결코 잊혀진 전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국가안보에 관심을 갖는 중요한 계기로 삼고 늘 유비무환의 자세가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보훈가족을 끝까지 정부가 책임지는 풍토가 정착되어야 한다.

우리가 지금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나라와 민족의 부름 앞에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진 호국영령과 참전용사의 거룩한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호국영령들의 존귀한 넋은 영원토록 희망찬 조국의 미래를 밝혀주는 등대로 우뚝 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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