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준 식 전 음성교육지원청 행정과장

 
 

세상물정 모르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소풍을 갈 때면 아버님이 주신 10원으로 아이스케키를 사 먹고, 고무로 만든 물권총 1개를 사면 족했다. 점심은 어머니가 싸준 밥에 장아찌 반찬이면 맛있게 먹었다. 남들이 김밥과 통닭을 싸 와서 선생님들과 둘러앉아 먹는 것을 보아도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의 어울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심은 젊고 세련된 부모들이 부럽기는 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소풍을 갈 때면 우리 어머님은 김을 구워서 밥을 참기름에 비벼 넣고 김밥을 길게 말아서 도시락에 수북하게 넣고 뚜껑을 눌러 싸 주시곤 했다. 평소에 도시락을 쌀 때도 배골을까 걱정되어 꾹 눌러 많이 싸 주시곤 했다. 당시는 김을 구하는 것이 어려워 대부분 집에 오래 보관해서 찌든 김을 사용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도시락을 먹을 때가 되면 내 도시락이 창피해서 친구들이 없는 먼 곳으로 가서 혼자 먹었다. 어떤 소풍날에 내 뒤를 졸졸 따라온 친구의 도시락 김밥도 우리 어머니가 싸준 김밥과 똑같았다. 소금을 많이 넣고 참기름을 쳐서 구워서, 맛은 참 좋았고 먹을 만했다.

우리 어머니는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자라시고, 출가를 하셔서도 농촌 생활을 하셔서 세상 물정을 잘 아시지 못했고, 없는 살림에서 김구경하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옛날 산골가정에서는 무엇보다도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이 급선무였다. 생활이 궁색하고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어릴 때도 제사 때나 김 구경을 했으니 김밥이라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김을 이용해서 김과 밥과 반찬을 싸서 먹는 문화는 조선 시대부터 해안가를 중심으로 있어왔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발을 이용해서 초밥을 만들어 먹었다. 발을 이용해서 김밥을 싸는 데는 시금치나 무를 넣어 싸는 것도 있고, 맨밥을 싸서 반찬과 먹는 방법도 있었다. 맛있고 유명한 충무김밥도, 마트에서 파는 삼각 김밥도 서민의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맛있는 음식이다.

요즘은 다양한 형태의 김밥이 생산되고 김밥을 전문으로 파는 가게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김밥을 주문하면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고소한 냄새가 나는 김밥에 단무지 몇 조각이면 별도의 반찬 없이도 어디서나 간단하게 먹을 수 있어 소풍이나 여행하는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 많은 부모들은 바쁜 관계로 학교 행사 날이면 집에서 김밥을 싸지 않고 김밥집에서 사 보내는 경우가 자주 있다.

우리 어머니의 김밥은 그것과는 근본부터 다르다. 김을 참기름에 재워 두었다가 화롯불에 구워내시고, 제삿날이나 먹었던 쌀밥에 참기름과 참깨를 넣고 비벼서 말아주신 김밥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참 맛있는 김밥이다. 만드는 방법을 모르셔서 생김이 어떠하던, 새벽부터 밥하고 구워내신 정성이 가득 찬 어머님의 김밥은 생각만 해도 입가에 침이 고인다.

이제 세월이 한없이 흘러 어머님 가신지도 20여 년이 지났고, 나도 이순을 지난 지 여러 해가 지났으나, 아직도 잠을 깨우는 어머님의 목소리가 귀가에 멀리 들리고, 김밥을 마는 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다. 어머님의 김밥은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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