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문 음성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꿈드림 센터장

 
 

가을 햇살이 제법 서늘하면서도 따사롭다. 여행하기도 좋고 외부 활동하기도 좋은 계절이다. 계절이 주는 습관은 나를 유혹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쩔 수 없이 외부활동을 자제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로 인해 외출하지 않은 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여행하거나 등산을 하거나 어디를 가도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이 불편해진 세월이다.

혹시 내가 전염되지는 않을까?

재수 없으면 코로나에 전염될 수 있다는 의심은 떨쳐버릴 수가 없다. 예상치 못한 사태로 코로나로 전염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타인과의 접촉이 불안한 시대이다.

예전 같으면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장소에서 오히려 안정감을 찾았다면 지금은 사람이 뜸한 한적한 시간대와 공간을 선호하게 되어 버렸다.

코로나로 인해 일상의 스타일조차도 조금씩 알게 모르게 다 바뀌어 가고 있다. 알고 보면 시대적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조치들이다.

올 추석을 앞두고 형제들이 모여 산소의 잡풀들을 제거하는 벌초 작업은 우리 형제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일과이다. 매년 추석을 일주일 앞두고 벌초 작업을 벌였으나 올해는 코로나 전염 위험성도 있고 하여 예년에 비해 3주를 앞당겼다.

그러다 보니 산소로 가는 길목은 아카시아 나무에 잡풀들이 빡빡하게 우거진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산소까지 가기 위해서는 예초기로 잡풀들을 제거하면서 산소에 도착하자니 시간이 꽤나 흘렀다.

코로나로 인해 벌초 작업도 사람들과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일찌감치 추진했지만, 산속의 길을 내느라 에너지를 너무 많이 쏟는 결과가 돼 버렸다.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청소년기 조카들도 다 모여 벌초 작업을 벌이다 보면 잔치마당처럼 떠들썩한 분위기였다.

할아버지 산소에서는 할아버지와 얽힌 추억의 실타래를 풀어놓으면서 제를 올리는 등 산소별로 고인이 되신 가족과의 일화로 시간 가는 줄 몰랐었다.

가족 중에 제일 연세가 드신 어른께서 벌초에 대한 지식도 풀어놓곤 하셨다.

“금화 벌초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은 불을 조심하고 때맞춰 풀을 베어 무덤을 잘 보살핀다는 뜻이야! 조상의 묘에 불이 나면 후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믿어왔지, 벌초는 무덤의 풀을 깎아 깨끗이 하는 작업이야, 대부분 추석 전에 무덤의 풀을 깎는 것을 벌초라고 하고 한식 때 하는 벌초는 금초라고 하지, 그리고 묘에 잔디를 입히는 것을 사초라고 하지,

조상의 묘소에 후손들이 이렇게 다 같이 모여 잡풀을 제거하면 조상을 대하는 마음도 한결 가볍지. 경건한 마음속에 생각도 정갈해지거든”

청소년기를 맞은 가족·친지들에게 알려줘 벌초에 대한 의미도 파악하게 하는 여건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형제들 4명만 모여서 벌초 작업을 진행했다.

추석날 제례행사도 벌초작업을 마친 산소에서 하는 것으로 하여 추석날 모임도 갖지 않기로 했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이 간소화되고 있다. 간소화되는 것이 편리성에는 기여할지는 모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을 잃는 것은 아닌지 반추하게 된다.

간편함 속에 숨겨진 가족 친지 간이 혈연을 매개로 한 끈끈한 유대감과 정서적 우애 등은 점점 멀어져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벌초와 성묘는 단순히 조상묘역의 돌봄 차원을 넘어 조상님들의 음덕을 기리며 일가친척의 마음을 하나로 결집하여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 돕고 의지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올 추석도 코로나로 인해 가족들이 다 함께 벌초와 성묘, 차례 등은 할 수 없지만, 조상을 통한 자신의 뿌리와 조상의 음덕을 되새겨보는 귀중한 시간이 되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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