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설희 수필가

 
 

엄마의 맛이 조금씩 달라졌다. 맛이 없는 건 아니다. 어쩔 땐 더 맛있다. 하지만 엄마 맛이 아니다. 오늘 저녁은 묵은지 닭볶음탕이다. 평소와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맛이 달랐다. 요즘 엄마는 요리할 때면 항상 유튜브를 찾아본다. 엄마가 즐겨보는 유튜브는 ‘후다닥 요리’. 덕분에 평소 먹던 멸치볶음이나 고구마 줄기 김치도 예전과 조금 달랐다. 이외에도 즐겨보는 요리법이 있다.

알토란과 백종원. 이제 모든 주부의 맛은 알토란과 백종원 맛이 아닐까 싶다. 조금 특이하다 싶으면 알토란 비법이고 음식점에서 먹어본 맛이다 싶으면 백종원 요리다. 우리는 엄마가 유튜브를 보며 요리 준비를 할 때면 원래 엄마가 하는 대로 해, 말하지만 엄마는 답안지를 보며 문제를 푸는 아이처럼 유튜브를 본다.

엄마 맛을 먹고 자란 나는 모든 맛의 기준이 엄마다. 맛집에서 음식을 먹을 때면 엄마 맛과 비슷하면 맛있다, 생각한다. 한번은 엄마와 같이 유명하다던 서울 남대문 갈치조림집을 갔는데 내 기준엔 엄마가 한 갈치 조림이 더 맛있었다.

그래서 나는 맛집에 대한 환상이 없다. 줄 서서 먹는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졸 서서 먹어봤자 엄마가 한 것보다 조금 더 맛있거나 엄마가 한 맛과 비슷하다. 그것도 몇 군데일 뿐, 대부분 엄마 맛보다 못하다. 그중 내가 제일 사 먹는 게 아깝다고 생각하는 건 닭볶음탕이랑 감자탕이다. 칼국수도 도토리묵밥도 엄마가 한 게 맛있다. 더 맛있는 걸 떠올리면 끝이 없다. 그래서 밖에서 사 먹는 건 집에서 해 먹지 않는 햄버거나 피자, 치킨이다. 혹은 족발. 수육은 엄마가 한 게 더 맛있다. 엄마 음식 앞에선 난 늘 주책이고 완고하다.

늘, 요리하기 전에 영상을 보는 엄마. 어쩌면 그것은 엄마의 즐거움인지도 모른다. 밥은 주식이지만 그저 배만 채우는 게 아니다. 지금 같은 농번기 저녁은 힘들었던 우리 가족의 포상이다. 가벼운 반찬으로는 허기를 채울 수 없다. 평소에는 평범한 꽈리고추볶음이었다면 요즘은 삼겹살을 넣은 중화풍의 삼겹살 꽈리고추볶음이다. 경상도식 소고기뭇국도 잘 안 먹던 국이지만 요즘은 기력보충을 위해 종종 식탁에 올라온다. 아무래도 힘을 많이 쓰니까 저녁은 주로 고기다.

엄마는 요리로 자신의 삶을 조금씩 변주를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우리 가족의 입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어쩌면 변하지 않지 않고 정체된 삶은 사는 건 내가 아닐까. 요즘 힘들다는 핑계로 매일 뭐든 미루고 있다. 가끔 설거지도 하기 싫어 도망간다. 그리고 이불 속에 모로 눕는다. 잠이라도 자면 아침이 피곤하지 않을 텐데, 그것도 아니다. 가만히 누워 유튜브나 게임을 한다. 이상하게도 그러면 충전이 되어야 하는데 나는 고장 난 배터리처럼 늘 누워있어도 방전이다. 아마 각오가 모여지는 게 아니라 흘러나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조금은 변주가 필요하다.

그래서 요즘에 빠진 게 다이어리 꾸미기다. 일명 다꾸. 우연히 3공 다이어리를 알게 되었다. 나는 문구류에 관심이 많아서 노트나 스티커 볼펜이 많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서점이나 대형마트에 가게 되면 손을 뻗다가도 아직 쓰지 않는 노트가 많은데, 볼펜이 많은데 하고 꾹 참았다. 그런데 3공 다이어리를 보고 내 마음이 조금 두근거렸다. 일기는 10년 넘게 꾸준히 쓰고 있다. 주로 무슨 일을 했다거나 먹은 것, 본 것을 적는다.

그래도 그나마 일과를 적지 않으면 그날 하루를 날린 기분이 들어 시시한 일들뿐이지만 적고 있다. 어제 일기를 대충 적자면 아침에 고추를 따고 점심은 오뎅탕을 먹고 낮잠을 잔 뒤 다시 고추를 따고 마른 고추를 고르고 저녁에 똘똘이 산책 등. 그리고 유튜브로 3공 다이어리 영상 보기. 소소하게 다이어리를 꾸미면 시시했던 일상을 꾸미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일상을 색칠하는 기분이다.

엄마의 삶도 그럴 것이다. 나는 이제 엄마의 맛을 고집하지 않기로 했다. 비록 가끔은 실패할지라도 시도해보는 즐거움이 있었을 것이다. 대신 설거지 앞에서는 도망치지 않는 딸이 되지 말자. 어째서 저녁 식탁에 없었던 반찬통과 그릇이 싱크대에 있는지, 기름이 잔뜩 묻은 냄비를 어떻게 닦을 것인지 고민하지 말고 설거지하자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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