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순 수필가

 
 

사는 동안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일이 몇 가지나 있을까. 나는 이순이 가까워진 나이에 이르러서 비로소 한 가지를 이루었다. 그것은 나만의 서재를 갖는 일이었다. 운정재(雲庭齋)라고 이름도 지었다. 구름이 머물고, 정원이 들어와 있는 서재라는 뜻이다. 본채와 떨어진 이곳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아이들 논술 수업을 하던 공부방이었다. 그러다 논술을 그만두면서 창고가 되었고, 더 이상 기거를 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캠핑 장비를 비롯한 서울서 가져온 아이들의 옷 보따리며 처치 곤란이던 부피가 나가는 운동기구도 쟁여 놓았었다. 거기다 동네 고양이들에게 공격을 당하는 우리 집 고양이 ‘랑이’의 잠자리도 이곳에 마련해 주었다.

그러던 중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집을 수리하신다는 분을 알게 되었다. 돈과는 가까워 보이지 않는 그 분은 목수 일을 하는 분이었다. 그 분을 알게 된 건 불과 넉 달 전 내가 강의하는 글쓰기 교실에서였다. 목수일로 바쁜 분이었는데 그날은 마침 일이 없어 오게 되었다고 했다. 책 읽기를 즐겨하고 글쓰기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사람은 오래 만나야 그 사람의 진실 된 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고작 서너 번 밖에 되지 않는 만남이었는데도 그분에게 신뢰가 갔다. 얼마 전 수업이 끝난 후 그분을 포함한 몇 명이서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게 되었다. 사실 그날은 다른 분이 집수리에 관해 상담을 하고 싶어 만들어진 자리였다. 그런데 옆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나도 궁금증이 일어 이것저것 묻게 되었다.

말투도 급하지 않았다, 성급하게 호언장담도 치지 않았다. 내가 하는 말을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세세하게 대답을 해 주는 그분의 모습에서 진실함이 보였다. 나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던가. 몇 년을 벼르고 꿈만 꾸던 ‘나만의 서재 갖기’의 일을 실행하기로 했다. 다행히 추석 전에는 일이 없다하셨다. 일주일 동안 공사를 마무리 짓는 조건으로 계약은 성사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작업에 들어갔다. 공사를 하는 일주일동안 조금씩 변해가는 창고를 보는 것도 나에게는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무엇인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곰곰이 생각을 하는 듯이 보였다. 잠시 후 생각이 정리 되었는지 다시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멋지다는 생각을 넘어 존경심이 들었다.

공사가 완성 된 날 정말 행복했다. 무엇하나 허투루 한 게 없었다. 그렇게 정성을 다해 만들었으면서도 공사비를 청구함에 있어서는 예상보다 자재비가 많이 들었다며 미안해했다. 물론 세상 물정에 어두운 내가 공사를 계약하면서 무조건 공사비를 싸게 해 달라고 했으니 마음이 매몰차지 못한 그 분 편에서는 미안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 분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내가 어리석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청구한 금액보다 더 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해 청구액만 드리고 말았다.

서재는 방이 하나지만 두 개의 공간인 듯 만들어 졌다. 책장이 있는 곳은 책도 읽고 공부를 할 수 있게 전등도 밝은 것으로 달았다. 그리고 입구 쪽은 조금 높은 들마루를 만들어 전기온돌판넬을 깔았다. 그곳은 지인들과 차도 마시고 수다도 떨 수 있는 공간으로 등은 은은한 것으로 배치했다. 책장이며 책상이 자리 잡고, 커피를 끓이고 마시는 주전자와 컵까지 자리를 잡으니 제법 운치가 있어 보인다.

문을 활짝 열고 들마루에 앉았다. 태풍이 지나간 끝이어서 그런 것일까. 하늘이 정말 맑고 깨끗했다. 게다가 파아란 하늘에는 토실토실 살찐 하얀 뭉게구름이 더없이 예뻐 보였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정원의 나뭇잎들까지 더해져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왔다. 그 순간 서재의 이름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정재(雲庭齋), 이제야 비로소 모든 것이 완성된 기분이다.

운정재(雲庭齋)에 첫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서재를 만들어 주신 목수 부부와 지척에 있는 지인이었다. 사실 돈도 넉넉하게 드리지 못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조금이나마 갚고 싶어 만든 자리였다. 지인이 가져온 와인에 어울리게 푸짐하진 않지만 초라하지는 않도록 술상을 준비했다. 마음결이 고운 목수 부부의 선물인 운정재(雲庭齋)라고 새겨진 명패를 벽에 세워놓으니 제법 있는 집 서재 흉내는 낸 듯하다.

술과 안주가 동이 나도록 밤이 깊어간다. 그럼에도 운정재(雲庭齋)에서 새나가는 수다는 동이 날 줄 모른다. 그 바람에 주인장 엉덩이가 내심 불안하다. 술을 더 내오나, 안주를 더 내오나, 어느 것을 더 내온들 수다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것을 간파한 주인장의 엉덩이는 어느새 들마루에 단단히 고정이 되고 말았다. 문밖, 뜰에서는 풀벌레가 울고 하늘엔 구름도 사라졌다. 어느덧 별들만이 어둔 하늘을 또랑또랑 지키는 지금은 깊은 가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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