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순 수필가

 
 

우연히 보았다. EBS에서 방영 중인 유아 대상의 프로그램이었다.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꿈은 왜 꾸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여러 아이들의 인터뷰도 나왔다. 어떤 아이는 낮에 놀지 못한 걸 꿈속에서 이루길 위해서, 또 다른 아이는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가게 하기 위해서 꿈을 꾸는 것 같다며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가만 생각해보면 나도 꿈을 자주 꾸는 편이다. 대개의 꿈들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자고 일어나서도 생생한 꿈들이 더러 있다.

그 중 내가 꾼 꿈이 들어맞은 날이 있었다. 꿈에서 너무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통통한 돼지 두 마리가 내 손가락을 무는 바람에 소리를 지르며 깨어난 일이 있었다. 다음날 꿈이 너무도 생생하여 인터넷으로 해몽을 찾아보았다. ‘재물이나 행운을 가져오는 꿈이니 복권을 사라.’는 꿈 풀이가 나왔다. 아침을 먹으며 남편에게 말했더니 자신에게 팔라며 천 원을 주었다, 며칠 후 복권 발표일 남편과 나는 부푼 꿈을 안고 번호를 맞춰보았다. 매주 복권을 사는 남편은 내 꿈을 사고 복권을 두 배나 더 샀던 모양이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아무리 맞춰 봐도 끝내 일등은 없고 5,000원짜리 한 장만 당첨되었다. 사실 내가 남편에게 꿈을 판 일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예전에도 화장실에서 분뇨가 넘치는 꿈을 꾸고 남편에게 팔았다. 물론 그때도 남편은 복권을 샀지만 한 장도 당첨이 된 게 없었다. 그렇게 이번에도 내가 꾼 꿈은 ‘개꿈’이 되어 잊혀졌다.

‘개꿈’을 꾸고 한 달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내가 고등 검정고시 한국사를 강의 하고 있는 센터에서 며칠 간격으로 두 개의 상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잊고 있던 그 ‘개꿈’이 ‘돼지꿈’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꿈속에서 보았던 통통했던 돼지들의 모습이 다시 살아 나에게로 달려오는 듯 했다. 상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에 뿌듯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방송에서는 전문가가 꿈을 왜 꾸는지는 아직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좋은 꿈을 ‘신의 선물’이라고 불렀다며 인터뷰를 마치고 있었다. 사실 사람들이 꾸는 꿈들은 억지로 꾸게 할 수 없는 영역이니 당연히 과학적으로 밝혀지기란 요원해 보인다. 그럼에도 많은 학자들은 꿈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을 주장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신경 학자이자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이란 책에서 ‘우리는 바람을 이루기 위해 꿈을 꾼다.’라고 밝혔다. 하긴 나도 돌아가신 부모님이 보고 싶을 때는 꿈속에서라도 만나 뵈었으면 하고 소원을 하는걸 보면 그 말이 영 생뚱맞아 보이진 않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꿈이 ‘신의 선물’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서 악몽을 꾸는 때가 더 많아지니 말이다. 화장실 꿈을 꾸었을 때도, 돼지꿈을 꾸었을 때도 나는 너무 무서워 소리를 지르며 꿈에서 깨어났었다. 물론 더러는 행복한 꿈도 꾼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행복했던 꿈들은 깨고 나면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꿈들은 대개 악몽이었다.

생각이 많아지고 걱정이 많다는 것은 나이가 들었다는 뜻일 게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소풍 전날에는 나도 분명 설레어 행복한 꿈을 꾸곤 했을 것이다. 많았건 적었건 ‘신의 선물’을 받았으면서도 부정을 하고 있다니 참 어리석기 그지없다. 그러니 신이 선물을 줄 리 있을까. 얼마나 더 세월이 지나야 나도 바빌로니아인들처럼 꿈이 ‘신의 선물’이라고,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거듭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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