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나영 음성가정(성)폭력상담소장

 
 

오랜 시간 인연을 맺어오던 사람과도 어느 순간 멀어짐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동안 쌓아왔던 믿음을 외면한 채 서운함에서 시작된 감정은 어느새 미움으로까지 변해버렸다. 이유도 모른 채 아니 알려고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서로의 손을 놓아버렸다.

관계의 문제들은 종종 당시의 상황에 빠져 다른 모든 것들을 잊어버리게 하고 함께 한 수많은 시간마저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미처 돌아보지 못한 많은 고마움과 추억들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서로가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나치는 고마움이 있을 것이다.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좋은 추억을 만들고 행복한 시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생겨나는 오해나 갈등이 있다면 이를 현명하게 관리하는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의 입장과 처지에서 생각해야 하는데 사실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그 상황에서 상대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우선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상대를 품어주고자 애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분명 어느 한쪽에게 일방적으로 이해를 바라는 것도 무조건 참고 인내하는 것도 바람직한 해결 방법은 아닐 것이다. 어느 순간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에게 실망하고 그런 관계 속에서 상처받은 자신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자신의 상처를 감추고 혼자만 다가간다고 해서 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소중한 사람일수록 그 사람 가까이에 늘 함께 있고 싶어 한다.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때론 우정이라는 명목으로 자신도 모르게 많은 것을 상대에게 바라며 상대가 아닌 자기 방식의 사랑을 하며 최선을 다했노라 말하고 있진 않은지….

문득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의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라는 시가 생각난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 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상대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서로 간의 거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너무 가까이 있어 서로를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깊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또한, 어찌보면 다양한 관계 속에 늘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는 갈등과 문제들을 어떻게 관리해가느냐에 따라 오히려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되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성장할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분명 갈등이나 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이지 이로 인해 그 누군가를 향한 생각 자체를 뒤집거나 긴 시간 쌓아왔던 믿음까지 외면하진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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