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설희 수필가

 
 

아침 6시 알람에 눈을 떴다. 인터넷 서점 선착순 쿠폰을 내려받아야 한다. 500원이 당첨됐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동생이 한마디 한다. 500원 때문에 일찍 일어났니? 복권은 쉽게 사면서 쿠폰을 쓰지 않으면 책을 쉽게 사지 못한다.

7시쯤 엄마가 깨웠다. 오랜만에 먹는 아침. 어제, 엄마가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묻기에 계란말이라고 답했다. 식탁에는 소고기미역국과 계란말이가 있었다. 새삼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느꼈다.

9시에는 소이에 있는 농기계 임대사업소로 콩을 고르러 갔다. 예전에는 겨울이면 엄마와 밥상에 앉아 온종일 콩을 골랐는데 이제는 선별기에 콩을 넣으면 알아서 골라준다. 11시에 일이 끝나 부모님은 바로 충주로 콩을 팔러 가셨고 나와 동생은 집으로 돌아와 씻었다. 씻고 나니 귀찮았다. 그대로 낮잠이나 잘까 하다가 동생이 나가자 했다.

무엇을 먹을지 한 시간 넘게 고민하다 새로 생긴 가게로 정했다. 운전은 동생이 했다. 라디오를 트는데 태연의 제주도의 푸른 밤이 흘러나왔다. 이 노래는 머리 말릴 때 흥얼거렸던 노래다. 별것 아닌 우연에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음식은 맛있었다. 후식으로 카페에 가서 바닐라라테를 시켰다. 달짝지근한 바닐라라테를 마시며 지키지 않을 계획을 잔뜩 세웠다.

나온 김에 미타사 지장보살님을 보러 갔다. 라디오에서 성시경의 두 사람이 흘러나왔다. 요즘 자주 듣는 노래다. 깜짝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볕도 좋았다. 복권가게에도 갔다. 즉석복권 만 원어치를 샀다. 내 배포는 여기까지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빵집에 들러 케이크 하나를 샀다.

강아지 산책을 시키고 고양이 밥을 주고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후식으로 커피와 함께 케이크를 먹었다. 복권은 10장 중 천 원짜리 3장이 되었다. 1,000원이 당첨될 확률은 1/3.3이다. 이런 내용을 일기에 적고 보니 여느 날과 비슷한 하루다. 오늘은 내 생일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생일이 내키지 않았다. 어린 시절, 생일을 잊고 지낸다는 어른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생일은 자신의 인생 중 가장 특별한 날이라고 여겼다. 예수님도 석가모니 부처님 생일도 나라에서 기념일로 지정할 만큼 특별한 날이다. 생일은 그런 거라 생각했다. 모두에게 축하받는 것.

나는 가족을 제외하고 남에게 생일 축하를 받은 적이 거의 없다. 학창 시절에는 방학 때 생일이었고 성인이 되었을 때는 친구들과 멀어졌다. 자초한 결과였다. 그래도 생일에 축하 메시지 하나 없는 문자함을 볼 때마다 울적했다. 축하받지 못하는 삶이 실패한 인생처럼 느껴졌다. 그렇다 해서 생일 축하받자고 맺고 싶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생일이면 혼자 잘 놀러 다녔다. 미술관에도 가고 박물관에도 갔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녔고 좋아하는 것들도 생일이니까 샀다. 그것도 잠깐이었다. 점점 생일을 기억하려고 애쓰는 게 구차해졌다. 그래서 흘려보냈다. 그러다 보니 정말 어른들 말씀대로 생일이라고 특별히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생일은 마음의 짐이었다. 생일이 지나야 마음이 편했다. 아무 일도 아닌 날,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 마음이 편했다.

오기였다. 거절이 두려워 먼저 거절하는 사람처럼 나는 나의 생일을 없애려고 했는지 모른다. 불편한 마음이 싫었다. 잊은 척 스치고 싶지 않았다. 사심 없이 기쁘게 생일을 맞이하고 싶었다. 하지만 피곤과 잠이라는 암초에 걸려 무산될 뻔했지만, 생일이라 참았다. 그런 작은 각오가 나를 일으켰다.

평소와 비슷한 날이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오늘따라 유난히 예뻤던 하늘에 행복했고 우연히 튼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와 기뻤고 기도를 많이 할 수 있어 즐거웠다. 엄마의 미역국도 (어쩌면 내가 태어난 날이 엄마 인생에서 가장 힘든 날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제부가 보내준 기프티콘도 감사했다. 보통 날이어도 분명 즐거웠을 하루지만 내 마음에 갇혀 아무것도 안 했으면 누리지 못했을 행복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생일이 나에게 준 선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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