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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정치를 이기는 세상을 보고 싶다김주환 강동대 사회복지과 교수,행정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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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2.22  09:2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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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는 과학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자연과학적 가치와 사고가 1900년대 전반을 휩쓸었다. 수학과 물리학에 기반한 학문적 성과와 방식이 자연과학은 물론 철학과 사회과학 전반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 경제학에서 케인즈경제학을 낳았던 영국의 케인즈가 수학자에서 출발한 경제학자라는 사실과 사회과학의 주류로 자리 잡고 있는 행태주의가 통계, 숫자 등 자연과학적 기법을 차용하고 있는 것은 이를 반증하는 사례이다.

어쩌면 이와 같은 자연과학적 사고체제의 광풍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20세기 인류가 이룬 그 많은 영광과 고통은 이들 자연과학적 성과의 산물이다. 인류가 이제까지 이룬 것보다 더 많은 고도의 물질문명을 단기간에 이룰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그 부산물로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비롯한 현대전의 참혹한 희생을 가져왔던 현대 무기의 위력은 이들 과학적 어두운 그림자라 할 것이다.

20세기에 수학과 물리학 등 자연과학이 크게 각광을 받은 것은 그들의 사고체제와 방식이 이성과 합리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과학의 학문적 특징의 하나는 검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1=2’라는 단수한 수학은 그 누구도 이를 검증할 수 있고, 거부할 수 없는 결과를 도출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과학의 방식에 의해 고도의 물질문명이 탄생하면서 사회과학에서도 바로 검증할 수 있고,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자연과학적 방식을 차용하고자 하는 행태로 나타난 것이다.

비단 자연과학적 이성과 합리의 방식은 정치에 있어서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과 우리 대한민국을 들 수 있다. 전후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과 60년대 이후 한국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이들 두 나라는 전문 관료의 역할이 지대하였다. 일본과 한국의 경제부처 관료들은 강력한 권한을 소유하고 국가정책을 주도하였다. 특히 한국의 경우 핵심 경제부처 장관은 현재까지도 경제관료 출신이 맡고 있으며 순수한 정치인 등은 결코 넘볼 수 없는 영역으로 자리메김하고 있다. 이들 전문 관료의 지식과 판단에 대해 정치는 읍소(?)를 하였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하는 아닐지 모르겠다. 전문 관료가 가진 힘은 오랜 숙련과 전문지식에 오는 권위였고, 이는 합리적 이성에 기초한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전반의 현상은 지식에 있어서 절대 거역할 수 없는 진리 혹은 정답이 있다는 것을 가정하며 전문가의 전문성에 대한 존중이 상식과 같이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학문적 사조의 발생과 함께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이들 사상은 지식의 상대성을 역설하였다. 사회과학은 물론 자연과학에 있어서도 진리의 상대주의를 주장하였다. 오늘날 페미니즘, 문화상대주의 등 전통적인 사고체제에 대립하는 행태들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학문적 경향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변화된 학문적 경향을 어쩌면 가장 반긴 분야가 정치가 아닐까? 과거 정치에 있어서 사실에 기반한 이성적 주장과 판단이 중요한 것이라면 오늘날 정치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주의·주장이 되었다. 합리적 이성이 아닌 대중영합적 가치들이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 이름을 빙자하여 정치를 통해 정책화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는 성중립적 화장실(Gender Neutral Restroom)’이 새로운 건물에는 들어서고 있다고 한다. 그 화장실에는 남자, 여자, 트랜스젠더, 장애인 등이 이용한다고 한다. 과거 남·여 그리고 장애인으로 구분되어 있던 화장실이 성 소수자들에게 차별적인 이유로 새로운 개념의 화장실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다소 황당한 화장실 정책의 변화라 할 것이다. 전통적 남·여 그리고 장애인 화장실은 기능적 편리에 의해 구분된 것이라면 신개념의 화장실은 심리적 위안(?)을 고려하며 만들어진 것이다. 성소수자들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신개념 화장실은 모두를 불편하게 하는 정책일 뿐이다. 과잉친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익명의 타인을 평가하여야 한다면 그 첫 번째 기준은 외모가 된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개인의 심리상태까지 고려한 화장실 정책은 비이성이 이성을 이긴 정책의 대표적 사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성중립화장실을 예로 들고 보니 다소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도 사회적 약자 등의 명목으로 비이성적 정책들이 늘어나고 있다. 탈원전, 코로나 방역과 보상 등 합리적 이성으로 보기 힘든 정책들이 난무하고 있다. 39일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비과학적 사고가 일소되고, 이성과 합리에 기반한 정치가 되살아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성과 합리는 상식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상식이 통하는 정치를 보고 싶다. 과학은 이성과 합리의 다른 말이다.

 
 
   
 

임인년(壬寅年)의 새해가 밝았다. 금년에 우리를 기다리는 가장 큰 국가적 행사는 3월 9일에 있을 대통령 선거일 것이다.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선거라는 것이 일정 시간이 지나면 치러지는 의례적인 행사이기도 하지만 민의를 묻고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이라는 측면에서 그 의의는 자못 크다. 특히 대통령 중심제와 중앙집권적 요소가 큰 우리나라의 경우 대통령선거는 다른 선거와 차원을 달리한다.

어떤 지도자를 선출할 것인가의 문제를 논하기 전에 지난 5년을 회고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확인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인간 세상의 근본 이치일 것이다.

지난 5년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혁명적이다’라고 할 수 있다. 출발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현 정부의 출범은 물론 집권 기간 정책들도 이제까지 역대 정부들과 그 결을 달리하기 있다. 먼저 현 정부의 출범은 대통령 탄핵과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건과 과정을 거치며 출범하였다. 수많은 전직 관료들이 구속되고, 이전 정부의 국정원장들 모두가 구속되는 등 일찍이 볼 수 없던 대대적인 ‘적폐청산’작업이 이루어졌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사법부에 대한 적폐청산 작업이었다. 직전 대법원장이 구속되고, 고위 법관들이 구속 혹은 기소되는 등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사건들이 집권 초반부를 넘어 중반까지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다음, 정책에 있어서도 과거와 그 차원을 달리하였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국가’를 천명하였던 것을 실천이라도 한 듯한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 먼저 전통적인 우방 국가였던 미국과 일본이 뒤로 밀리고, 중국과 북한이 그 빈자리를 차지한 듯한 대외정책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건국과 발전에 있어서 굳건한 동맹국이었던 미국과의 관계가 크게 소원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현 정부 내내 제대로 된 합동군사훈련이 이루어진 못하고 있다. 역대 주한 미군 사령관들은 이것을 공공연히 비판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중국의 관료들이 우리나라를 ‘소국(小國)’이라 칭하는 무례한 언사(言辭)가 이어짐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항의조차 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일본과는 제대로 된 정상회담조차 없었던 반면 북한 김정은에 대해서는 비굴한 모습까지 보이며 정상회담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 현 정부이다.

다음으로 탈원전과 종합부동산세는 현 정부하의 정책 실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이제까지 역대 정권은 고집스럽게 원전을 중심으로 한 전력정책을 추구하였다. 외국의 크고 작은 원전사고에도 불구하고 원전건설을 지속하였던 거의 유일한 국가가 대한민국이었다. 집권 초기 원전에 비판적이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이내 원전건설의 지속과 방사능폐기장의 마련이라는 친원자력 정책을 유지·강화하였다. 그러나 현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탈원전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던 원전산업을 뿌리부터 고사시키고 있다는 비난에 직면하고 있다. 원전을 기반으로 하는 낮은 전기료는 우리나라 산업경쟁력의 핵심이었다는 측면에서 자못 미래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또한 ‘부동산만큼은 자신 있다’라는 대통령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현 정부에서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집 없는 서민들을 ‘벼락거지(?)’로 만들어버렸다. 집 있는 사람들에게는 막대한 세금을 부과하였다. 집 소유의 유·무에 관계없이 이들 모두에게 주거의 안정성이 크게 떨어뜨렸다.

더욱이 각종 미사여구(美辭麗句)로 꾸며진 선심성 정책들로 인해 막대한 국가부채가 발생하였고, 이들 부채는 미래세 대에 커다란 짐으로 남겨질 예정이다. 저출산·고령화라는 인구학적 심각한 변화를 감안할 때, 구조화되고 있는 국가부채증가가 어떤 미래를 낳을지 걱정된다.

이외에도 고위공직자수사처(일명 공수처)의 신설, 검·경의 수사권 조정 등이 사법개혁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이런 일련의 조치들에도 불구하고, 현재 발생하고 있는 각종 권력형 비리 수사는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개혁의 진의를 의심케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숨 가쁘게 달려온 현 정부의 5년도 그 끝을 향해 달려간다. 혁명(革命)은 일종의 가치 중립적 단어에 불과하다. 커다란 변화를 의미할 뿐 그것이 반드시 긍정적 가치를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국정농단과 사법 농단으로 시작된 적폐청산작업은 최근 그 행위 가치를 의심받게 하는 일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정농단의 단초를 제공했던 태블릿 PC 소유 논란이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사법 농단과 관련한 재판에서 해당 판사들이 속속 무죄판결을 받고 있는 것에서 반증적 추론을 해본다. 현 정권에 대한 평가는 후대의 역사가들에 의해 보다 냉정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새로운 5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지난 과거를 평가해 볼 의무가 있을지 모른다. 실패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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