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순 수필가

 
 

요즘은 어디를 가기에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코로나 확진자가 10만 명을 넘어서는지도 며칠이 지났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러한 상황이 나에게는 나쁘지만은 않다. 코로나 이전 같으면 여행을 간다거나, 지인들과 만나 식당이나 카페도 자주 갔을 터이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모임도 못 하고, 될 수 있으면 친구들과도 만남을 줄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적으로 책을 읽는 시간이 많아졌다. 책을 읽는 습관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주로 자기 전 1시간 정도 책을 읽곤 했는데 요즘은 낮에도 책을 잡게 된다. 강의를 위한 수업 공부하는 시간을 빼면 하루 서너 시간은 책을 읽는 듯하다.

나는 하루 한 권의 책만을 독파하지는 않는다. 몇 권의 책을 쌓아 놓고 읽는다. 그것은 난해한 책과 쉬운 책을 번갈아 읽기 위함이다. 다소 이해가 어려운 책은 어떤 때는 의무감으로 페이지 수를 정해 놓는다. 그리고 비교적 쉬이 읽히는 책들은 페이지를 정하지 않는다. 술술 읽히는 책들은 어떤 때는 그 자리에서 완독하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날 때도 있다. 언제였던가. 너무도 재미있어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완독을 했던 책이 있었다. 오노레 드 발자크의 《나귀 가죽》이라는 책이었다. 초반부에는 만연체로 이어지다 보니 다소 지루한 면도 있었지만, 중반을 들어서면서부터는 스토리의 흡입력이 놀라웠다. 그날 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새벽녘에서야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었다. 짧은 잠을 자고 일어났지만, 이상하게도 피곤하지는 않았다. 그 책은 500페이지에 가까운 책이었음에도 다 읽고 난 다음 가슴이 얼마나 뛰던지, 뿌듯함은 물론이고 성취감마저 일었다. 그 경험은 내가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가 되곤 했다.

소설임에도 난해하여 이해가 가지 않아 머리가 무거워지는 책이 있는가 하면, 철학서와 같이 삶의 본질을 캐묻는 무거운 주제임에도 머리가 맑아지는 책이 있다. 소설을 읽는 이유는 재미와 감동 더 나아가 삶의 지혜까지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 내가 읽는 책은 소설책임에도 영 진척이 없다. 어떤 날은 정말 억지 춘향으로 읽었다. 시점도 엉망인 그 책은 윌리엄 포크너의 대표작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라는 책이다. ‘죽음’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난해함도 있지만 각 장별로 이루어지는 인물들의 내면세계가 나의 정서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면이 더 크다. 가난한 농부 앤스 번드런의 아내이자 다섯 남매의 어머니인 애디의 죽음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서술하는 방식이 독특하다. 어떤 장은 길기도 하지만 대개 짧게 이루어진 장이 많다. 각 장마다 다른 등장인물들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달된다. 등장인물도 15명이나 나온다. 그러다 보니 등장인물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다. 인문학 독서 토론 모임에 참여한 지 5년 정도가 되었다. 이번 책도 모임에서 정한 책이었다. 고전 읽기로 몇 년째 하다 보니 세계 고전문학을 꽤 여러 권 접했다. 정독해야만 토론에 참여할 수 있어 꼼꼼하게 읽어야만 한다.

모임에서 정한 책 말고도 나는 철학서와 같은 비문학도 즐겨 읽는다. 그리고 비교적 읽기 수월한 수필집이나 소설책도 좋아한다. 책을 읽다 보면 책에도 맛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이나, 수필집은 상큼하고 개운하여 마음이 맑아지는 맛이다. 비문학이나 고전문학은 읽을 때는 어려워 맛은 없지만 다 읽고 나면 왠지 보양식을 먹은 듯 깊은 맛이다. 속이 든든하고 속이 꽉 찬 느낌, 마음이 한 뼘쯤은 자라 건강해진 맛이다. 우리가 매일 보양식을 먹을 수 없듯이 책도 마찬가지이다. 때로는 마음을 가볍고 맑게 만들어 주는 책도 읽어야 한다.

오늘 밤에도 나는 영양이 듬뿍 든 책 한 권을 먹어야 한다. 달콤하거나 상큼한 맛도 없다. 오히려 거칠고 써 넘기기도 힘들 터이다. 하지만 책 한 그릇 깨끗하게 비우고 나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환희의 기쁨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리라.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