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식 전 음성교육지원청 행정과장

 
 

어저께가 어머니 기일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올해로 20년이 되었다. 돌아가실 때쯤 어머니는 살아온 날들이 한바탕 꿈을 꾸고 난 것 같다고 하셨다. 어느 때곤 사람을 만나면 살아온 파란만장한 한평생 이야기를 하시곤 했다. 우리 어머니가 살아온 시대는 왜정시대로부터 해방을 맞이하고 6.25 전쟁을 겪으면서 갖은 고생을 다 한 시절이었다. 가난을 늘 곁에 두고 사시어 청빈하고 절약이 몸에 밴 어려운 시절을 살아오셨기에 더욱 한평생이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남아있는 것이요, 급속히 좋아진 세월을 사는 자식들이 불안 불안하셨으리라 짐작이 된다.

어머니는 지금도 항상 내 곁에 계신 거 같고, 집에 가면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살아 계실 때, 마음 아프게 해드리고 나로 인하여 슬프게 해드린 많은 것들이 마음 한구석에서 내 인생의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루 3끼를 먹고 살기 어려운 산골의 어려운 가난한 살림살이 속에서 머리를 잘라 밥그릇을 장만하고, 벼 이삭을 주워 자식을 먹이고 이 만큼 길러내시어 사람 노릇을 하고 살게 한 것은 그 시대로서는 대단하신 일이다.

어머니는 늘 밭에 가서 일하셨고 점심때가 지나서야 집에 오셨다. 늦은 점심을 먹고도 또 바로 일터로 가시곤 했다. 비닐이 나오기 전에는 밭에 가면 조반 풀반 이어서 김을 매는 일로 많은 날을 소비하곤 했다. 어머니에게서는 늘 땀 냄새가 났다. 어린 시절 엄마 냄새는 늘 그런지 알았다. 우리는 피곤해서 누워 계신 어머니 품으로 경쟁하며 모여들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엄마 냄새는 땀 냄새이다. 요즘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냄새이다.

명절 때나 되어야 양말 한 켤레를 얻어 신을 수 있던 때, 냄비 하나만 사도 부부싸움을 하던 시절에 무사히 그 시절을 넘길 수 있던 것은 가족 간에 정이 넘쳤기 때문이요,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이 자식이 의지하는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학교 다닐 때 고사리를 팔아 용돈을 마련해 주시던 어머니, 온 동네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군대에 갈 때도 절대로 울지 않으셨던 어머니, 그 지독지정(舐犢之情)의 사랑이 한없이 그립다.

불교 경전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에는 어머니가 아이를 낳을 때 3말 8되의 응혈을 흘리고 8섬 4말의 혈류를 먹인다고 했다. 또 ‘십대은’이라 하여 어머니가 아이를 잉태하여 아이를 낳는 고통을 이겨내고 먹이고 씻기고 기르며, 멀리 있는 길을 떠나면 걱정하고, 자식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하고, 그 걱정이 죽어서야 끝이 난다고 했다. 부모의 은혜가 한량이 없고 크고 깊음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 어머니도 자식 6남매를 잃고 이십여 년을 삼신당을 찾아 무릎이 달도록 수천 번 절하고 빌려서 우리 삼 형제를 낳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 절을 찾아 떡을 해놓고 저녁내 절을 하는 어머니를 보았다. 자식의 무병장수를 비는 간절한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돌아가시는 해까지 절에 다니셨다.

까마귀는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인다고 한다. 사람이 늙으면 자식에게 몸을 의지하여 살아간다는 말은 요즘 사람들의 눈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부모가 죽은 뒤 후회하지 말고 살아 계실 때 효도를 다 하지 못할지라도 사랑하는 마음을 전해 드리면 좋을 것 같다. 오늘도 어머니 따라 다니던 어린 시절이 마냥 그립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