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살려 준 고마운 이들

“나이 먹고 힘없는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목숨에 연연하겠습니까? 모자란 자식놈하고 희망 없는 세상 뒤로하고 저승으로 떠날 생각까지 했습니다.”

100년만에 폭설이 언제 내렸냐고 의심이 갈 장도로 봄 햇살이 부끄러운 듯 창문에 얼굴을 내민 토요일 오후 군청 사무실로 초췌한 모습을 한 노인이 들어와 문화공보과를 찾으며 건넨 말이다.

삼성면 능산리 김홍만(여·68세)씨는 이번 폭설로 눈속에 파묻힌 1천500여평의 인삼포를 바라보며 삶을 포기하는 극한 상황까지 결심했다고 했다.

47세의 나이로 홀로돼 20여년간 2남3녀의 자식 뒷바라지로 늘어나는 부채는 감당키 어려워졌고 출가한 딸자식 또한 사는 형편이 어려워 기댈 엄두조차 못 냈다고 한다.

더욱이 큰아들(48세)은 26세 젊은 나이에 군대에서 입은 심한 충격으로 정신이상자가 되어 돌아온 후 줄곧 김씨의 손과 발을 필요로 하고, 척추수술로 몸을 제대로 움직이진 못하지만 경운기 하나는 잘 몰아 어머니의 고된 농사일을 도우며 “인삼 잘 키워서 빛도 갚고 어머니 호강도 시켜주겠다”던 작은아들마저 작년에 김씨보다 앞서 세상을 떠나 가슴에 못을 박아 아직까지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정신적, 물질적 고통에 지난 4일 감당키 어려운 폭설까지.
김씨는 “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하늘이 원망스럽고 세상이 싫어진 순간, 불사조처럼 나타나 내 인생을 살려 준 고마운 이들이 있어 도움만 받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찾아 왔다”고 했다.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무실에서 깨끗한 옷차림으로 앉아 대접받고 있을 삼성면과 농협직원들이 작업복에 흙과 거름을 묻혀가며 손수 준비해 온 컵라면과 빵, 우유로 허기진 배를 채워가며 늦은 밤까지 쓰러진 인삼포를 세워줬는데, 가진 것이 없어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고구마 삶아 준 것 밖에 없는데 그것도 되레 고맙게 맛있다고 먹어주는 직원들을 보는 순간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며 또다시 눈물을 보였다.

이번 폭설로 무수한 농민이 삶을 포기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먼거리를 마다않고 한 걸음에 달려와 이웃의 아픔을 결코 저버리지 않는 인정과 사랑이 있어 그들은 쉽게 희망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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