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순 수필가

 
 

요즘 호미를 들고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는 날이 잦다. 집 주변에는 밥상 재료가 지천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꽃이 펴서 못 먹지만 얼마 전까지는 냉이도 제법 캤다. 지금은 달래와 씀바귀 고들빼기, 취나물, 두릅이 한창이다. 많지는 않지만 한 두 끼를 차려낼 양은 충분하다. 냉이와 달래는 향이 얼마나 진한지 된장국이나 찌개를 끓이면 한 그릇 뚝딱이다. 달래 장을 콩나물밥에 얹어 비비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오늘은 고들빼기와 씀바귀가 주인공이다. 예전에는 입에도 대지 않던 음식이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 이렇게 쓴 음식도 맛있게 느껴지니 이상한 일이다. 남편도 마찬가지이다. 쓰고 신 음식은 절대 먹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요즘 내가 뜯어온 씀바귀를 넣은 비빔밥을 잘도 먹는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인생의 쓴맛을 적지 않게 맛보았기 때문일까.

요 며칠 나에게는 방학이 찾아왔다. 검정고시 시험이 지난주 토요일에 있어 이번 주는 강의가 없다. 다른 강의들도 때마침 이달 말이나 돼야 시작이다. 우리 집은 단독 주택이라 봄이 되면 꽃들로 마당이 환하다. 하지만 좋기만 한 일이 어디 있을까. 마당 여기저기에서 봄과 함께 불청객들의 등장도 함께한다. 어찌 이리도 많은 씨를 퍼트렸을까. 화단에 있는 야생화들은 내 바람과는 다르게 군데군데 올라오지 않은 것들이 많건만 마당의 풀들은 무얼 먹고 저리도 빼곡하게 푸른지 모르겠다. 더구나 며칠 전 내린 봄비는 모든 초록 생명에게는 영양제와도 같으니 얼마나 달고도 맛이 있었을까. 남편이 크고 작은 돌을 이리저리 맞춰 깔아 놓은 수돗가 주변을 먼저 공략하기로 했다. 그곳은 호미로는 돌 사이의 풀들을 뽑기에는 어림도 없어 가는 철사로 뽑아내기로 한다. 쪼그리고 앉아 뽑다 보니 다리도 저리고 손도 화끈거린다. 뽑히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풀들과의 끌탕에 한나절이 휙 지나갔다. 이 풀들에도 지금, 이 순간이 인생의 쓴맛을 보는 중이리라.

쓴맛은 꼭 필요하다. 삶이 달기만 하다면 보람이라는 뿌듯함도 용기라는 소중함도 알지 못한다. 검정고시를 하시는 분들은 60대에서 80대시니 하나같이 공부가 정말 힘들고 어렵다고 하신다. 그동안 쓰지 않던 머리를 쓰려니 얼마나 힘들지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하지만 쓴맛은 입맛을 돌게 하고 우리의 장기를 튼튼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하니, 공부하는 지금, 이 순간이 삶의 심장을 튼튼하게 만드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시면 어떨까. 씀바귀가 쓰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그 쓴맛을 즐기는 사람은 그만큼 쓴맛 뒤에 남는 깊고 진한 맛 때문에 또 찾게 된다. 공부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정말 힘들고 어려워 포기를 하고 싶은 순간이 문득문득 들겠지만, 시험을 통해 합격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 환희의 순간은 결코 잊히지 않는다. 설령 시험에 떨어졌다 하더라도 새롭게 알게 되는 지식이 때로는 삶의 지혜로 가슴속에 쌓이게 되니 이 또한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떤 이는 사는 데 하나도 지장이 없는데 뭐하러 늦은 나이에 어려운 공부를 하느냐고도 한다. 하지만 공부를 하다 보면 힘들고 고통스러운 쓴맛을 지나 혜안도 깊어진다. 그러다 보면 자신만 알게 되는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순간을 저절로 체득하게 된다.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듯이 씀바귀가 꼭 그렇다. 또한, 씀바귀는 이상하게도 젊은이들보다는 어느 정도 삶의 터널을 지나온 사람들이 좋아한다. 마치 인생이 씀바귀와 같다는 듯이 말이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뒤늦은 나이에 공부하시는 분 중에는 고등학교 졸업 시험에 합격하시면 그 맛에 취해 대학까지 진학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 이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쓴맛을 즐기는 분들이란 생각이 든다.

심장을 튼튼하게 한다는 씀바귀, 나는 오늘도 그 쓴맛을 한 움큼 집어 양푼에 넣고 쓱쓱 비빈다. 매운맛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고추장을 듬뿍 넣고, 쓴맛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씀바귀 한 움큼을 넣은 비빔밥이다. 매운맛, 쓴맛을 즐기는 우리는 아마도 천생연분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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