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문화원

한자

蔡申保-墓-虎患

영어의미역

The Tale of Chae Sinbo and a Disaster Caused by Tigers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상희

[상세정보]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에 있는 채신보의 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1982년에 출간한 『내고장 전통가꾸기-음성군-』에 수록된 이후 『음성의 구비문학』과 『음성군지』 등에 실려 전한다.

[내용]

채신보(1420~1489)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1458년(세조 3)에는 음성현감을 지내기도 하였다. 1482년(성종 13)에 남양도호부사를 지내고 퇴임한 뒤 음성군 삼용리 물언덕에서 여생을 보내다 향년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자손들은 그의 묘소를 이곳 삼용리 뒷산에 마련하였다.

채신보의 아들 채수는 조선왕조 5백 년을 통털어 단 두 명밖에 없다는 삼장장원의 한 사람으로, 대사성과 호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경상북도 함창에서 여생을 보냈다. 채수는 젊었을 때는 한양에서 벼슬살이를 하느라 자주 성묘를 오지 못했고, 나이가 들어서는 함창과 음성이 너무 멀어서 3,4년에 한 번 정도 문중 사람들과 성묘를 하러 왔다.

그런데 이런 이유 말고도 채신보의 묘소를 자주 찾아오기 어려운 이유가 또 있었다. 그것은 성묫길에 반드시 일행 중 누군가가 호환을 당하기 때문에 문중 사람들이 성묘 오기를 주저하였던 것이다. 어느 해, 길지를 찾아 이곳 삼용리를 찾아온 지관이 채신보의 묘를 보고 탄식하기를, “관운은 자손 백대에 이르겠으나 호환을 막을 수도 없겠구나.” 하였다. 때마침 이 소리를 채씨 문중 사람이 듣고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자 지관은, “채공의 묘는 그 산세형국이 복호형이어서 자손이 성묘를 가면 반드시 호환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였다. 대책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리하여 함창채씨들은 그후로 성묘를 할 때는 채신보의 묘소가 마주 보이는 맹동면 통동리와 접경에 있는 도마치에서 멀리 망배만 하고 돌아왔고, 그로부터 호환을 당하는 일도 없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채신보의 묘와 호환」은 풍수 설화 중 음택에 관한 이야기로, 풍수 형국을 알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비보 모티프로 구성되어 있다.

[참고문헌]

『내고장 전통가꾸기』 -음성군-(음성군, 1982)

『음성군지』 (음성군지편찬위원회, 1996)

『음성의 구비문학』 (음성문화원·음성향토문화연구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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