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나영 음성가정(성)폭력상담소장

 
 

정의와 공정을 실현하겠다는 외침이 여기 저기서 들려온다. 국가와 지역사회를 위해 혼신을 다하겠다는 소위 스스로를 일꾼으로 자처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말속에는 언제나 정의와 공정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정의는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고 사람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로 갈등이 커지면서 정의는 사회적 성격을 띠게 되었고 그래서 오늘날 정의라고 하면 대부분 사회 정의를 가리킨다. 그러나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관점은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혹은 이념적 입장에 따라 다양하다.

예를 들어 5명의 사람이 동일한 출발선에서 출발하였지만, 만약 조건이 같지 않은 경우 즉, 맨몸으로 달리는 사람, 휠체어를 탄 사람, 자전거를 탄 사람,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탄 사람 등으로 최초의 조건 자체가 불평등하다면 이것은 형식적인 기회 평등만이 주어질 뿐 실질적인 기회균등이 제공되지 않은 공정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처한 상황이 불리하거나 취약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지원하면서 실질적인 기회균등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결국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지 않는 사회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공정이고 정의로운 사회로 가기 위한 출발선이라고 생각한다.

공정 위주의 사회를 만들고 능력을 최우선으로 하여 인재를 영입하겠다는 정책들은 많은 사람에게 공정한 사회로의 지름길을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지만 자칫 승자에게는 성공을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 얻은 결과라는 오만함을 갖게 할 수 있고 패자에게는 재능도 없고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비난이 더 쉬워질지도 모른다.

마이클 샌델이 던진 질문처럼 ‘능력으로 평가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 ‘능력이란 본인의 노력만으로 획득할 수 있는 것인가 ’ 등의 질문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한 번쯤은 진지하게 던져볼 필요가 있다.

정의와 공정의 사회는 형식적 평등이 아닌 실질적 평등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남녀노소 그 누구라도 그 사람이 어느 곳 어느 위치에 있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 차별과 혐오, 폭력이 없는 안전한 사회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온전히 힘을 쏟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정의와 공정이 살아 있는 세상일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힘, 그것이 바로 정의로운 힘이다. 힘은 우리가 생존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하다. 나 자신을 위해서 또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힘은 반드시 필요하며 결국 우리가 원하는 삶을 추구해 나가기 위해서는 진정한 힘을 발휘해야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힘이 타인을 통제하거나 조종하기 위해 쓰여질 때 결국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망가트리고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정의로운 사회는 정의롭게 힘을 얻고 정의롭게 힘이 발휘되는 사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힘이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 침묵만이 살길이 아니라 때론 두려움이 없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으며 그에 따른 불안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사회,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사회, 나의 부족함을 타인에 대한 분노와 혐오로 가져가지 않고 인정할 수 있는 사회, 이런 것들에 대한 이해와 믿음, 공감과 지지가 함께 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희망해본다.

또한, 약자의 인권을 함부로 침해하는 야만적 힘 앞에서 그것은 잘못된 행동임을 사회구성원 모두가 집단적 목소리를 내어줄 수 있을 때 우리 사회의 정의로운 힘은 모두를 지켜줄 것이다.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현세대가 미래 세대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중요한 과제는 진정한 공정과 정의가 바로 서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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