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설희 수필가

 
 

해가 뜨거워 쉬는 오후였다. 캄캄한 방안에서 조용히 숨어있는데 아빠가 불렀다. 나가보니 빨갛게 익은 천도복숭아가 플라스틱 과일 상자에 가득 있었다. 아빠는 복숭아를 봉지에 담아 친척들에게 나눠주라 했다. 몇 년 전 아빠는 천도복숭아 몇 그루를 심었다. 나는 신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신 것만 봐도 입에 침이 솟고 몸에 소름이 돋는다. 복숭아는 나의 관심 밖이었다. 그래서 꽃이 핀 것도 못 봤는데 불긋하게 오른 복숭아를 보니 시간이 언제 갔나 싶다.

나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에는 인심이 좋다. 봉지 가득 네 개를 쌌다. 외삼촌 댁, 당숙 아저씨 댁, 큰 당숙 할머니 댁, 작은 당숙 할머니 댁. 모두 우리 일을 자신들의 일처럼 도와주시는 고마운 분들이다. 올해도 몇 번이나 도움을 받았다.

제일 먼저 가깝게 사는 당숙 아저씨 댁에 갔다. 비어있었다. 생각해보니 서울에 가셨다는 이야기가 떠올라서 집 앞에 봉숭아를 내려놓았다가 다시 집었다. 복숭아는 쉽게 무른다. 오늘만 날이 아니다.

다음으로 외삼촌 댁에 갔다. 외숙모는 복숭아를 받자마자 덥다며 아이스크림을 주셨다. 더운 날씨라 감사하다. 외숙모는 우리가 드린 복숭아를 바로 씻어 드시며 맛있다며 고맙다 했다. 내가 더 고마웠다. 외숙모는 우리에게 아이스크림을 줬는데도 다시 냉장고를 뒤적거리셨다. 우리는 괜찮다며 외삼촌 댁을 도망치듯 나왔다. 외삼촌 댁에 가면 항상 배가 빵빵해져 나온다.

나는 동생에게 나온 김에 드라이브나 하자 했다. 5분이면 갈 수 있는 동네를 일부러 멀리 돌아갔다. 농사철이 되면서 여유 없는 시간을 보냈다. 돌아가는 길에 아빠 트랙터가 보였다. 아빠는 우리에게 천도복숭아를 나누어 주라 말한 뒤 트랙터를 끌고 나가셨는데 이 밭에서 일하고 계셨다. 우리는 있는 힘껏(그래봤자 차 안에서) 아빠에게 아는 척을 했지만 아빠는 우리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렇다고 차에 내려 아는 척을 한다 해도 할 말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지나갈까 하다가 자동차 기어 옆에 차가운 생수병이 보였다.

날이 뜨거워 동생이 나가기 전에 챙긴 물이다. 우리는 외숙모가 주신 아이스크림을 먹어서 목이 마르지 않았다. 동생은 차에서 내려 아빠에게 생수를 드렸다. 아빠 얼굴엔 땀이 뻘뻘이다. 돌아가길 잘했다.

동네에 들어와 작은 당숙 할머니 댁에 갔다. 설마 했는데 역시였다. 기척이 없었다. 한낮인데도 일을 손에 놓지 못하고 나가셨나 보다. 그래도 돌아올 것을 알기에 문 앞에 복숭아를 놓고 갔다. 다음에는 큰 당숙 할머니 댁에 갔다. 역시 비었다. 문 안에 천도복숭아를 밀어 넣었다. 이대로 카페나 갈까 하다가 논과 밭을 둘러보았다. 한 시간 뒤면 똘똘이 산책을 해야 하고 고양이들 밥도 줘야 한다. 게다가 가뭄이 심해 논과 밭의 상태가 궁금했다. 논밭을 둘러보고 내려오는데 동네 아주머니가 보였다. 우리 집 일을 많이 도와주시는 아주머니다. 우리는 차 안에 하나 남은 천도복숭아를 드렸다. 고맙다는 말에 마음이 간지러워진다. 저녁 시간이 되니 슬슬 동네 사람들이 밭에서 집으로 갔다.

얼마 안 가 작은 당숙 할머니도 만났다. 할머니 보행보조기에는 방석과 호미가 있었다. 우리는 할머니에게 천도복숭아를 놓고 왔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고맙다 했다. 이제라도 알릴 수 있어 마음이 가벼워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큰 당숙 할머니 댁에 갔다. 할머니는 돌아오지 않으셨다. 포기하고 집을 떠나는데 할머니가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어오셨다. 들깨 모를 심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우리는 할머니에게 천도복숭아를 놓고 간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뭐 하러 가져왔냐며 화부터 내셨다. 할머니는 화부터 낸다. 그래도 끝은 항상 웃으면 말한다. 그려, 잘 먹을게. 마음이 따뜻해진다. 해는 자기 소임을 다하고 서서히 지고 있었다. 심부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 안은 동생과 나뿐이었지만 선물을 가득 받고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