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나영 음성가정(성)폭력상담소장

 
 

1997년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이후에도 여전히 가정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피해자 보호보다도 가정을 지키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법과 정책에 있다. 가해자 처벌은커녕 피해자 보호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피해자들의 생명은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

교제 중이든 혼인 혹은 이혼 관계를 가리지 않고 여성에 대한 폭력은 때와 장소와 이유를 불문하고 가해자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이유만으로도 일어난다.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은 여성의 헤어지자는 말을 자신을 무시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여성이 스스로 무엇을 결정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는 순간 남성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여성에게 분노한다.

여성 대상 폭력 범죄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가해 남성의 핑계는 “여자에게 무시당해서”이다. 유영철도 그랬고 강남역 때도 그랬다. 남편에게 이혼하자는 말을 꺼낸 아내가 살해당한 사건도 있었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피해자가 벗어나려면 벗어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본인이 싫지 않아서 정리하지 못했거나 좀 더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피해자를 탓하기도 한다.

이것은 피해자가 처한 이들의 상황과 사회의 차별적 구조를 제대로 보지 못한 채 피해자와 가해자가 평등한 관계라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한 판단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언제 어디서든 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한 여성은 폭력의 가해자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증거 제일주의인 법체계 또한 폭력 피해 여성들에게는 넘기 어려운 벽이다. 둘만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여성폭력에 대해서 객관적인 증거를 수집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여성폭력 피해자의 진술을 중심으로 사건을 조사하고 있으며 가정폭력 범죄에 대해 가정 보호 사건이 아닌 형사사건으로 엄중하게 조치하고 있다. 지난해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되었으나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현실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스마트워치에 목숨을 의지해야 하는 여성들의 상황은 늘 불안하고 참담하다.

현재 가정폭력·성폭력 등이 각각의 법률에 따라 별도의 피해자 지원 근거를 두고는 있지만, 예산과 인력 등에 있어서는 여전히 열악한 상황이다. 현장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국가의 책무와 지원체계를 더욱 강화해 나가야만 한다,

가정폭력은 명백한 인권 문제이자 사회적 범죄지만 이에 대한 정부 부처나 관계기관의 인식, 법적인 대응은 여전히 미흡하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규정된 법률의 목적을 현재 ‘가정의 보호 및 유지’에서 ‘가정 구성원의 안전과 인권 보장’으로 개정해야 하며 가정폭력 범죄자 체포우선제도를 시행하여 피해자 보호를 우선해야만 한다.

또한, 가정폭력범죄에 대한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하여 피해자에게 합의·처벌불원 의사를 종용하는 사법절차를 개선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국가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한 중요한 책무가 있으며 이를 국가 정책의 행보로 보여주길 바란다.

또한, 우리 사회는 그 어떤 이유로든 폭력을 용인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되며 사회구성원 모두가 이에 집단적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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