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순 수필가

 
 

그를 만난 건 루마니아 콘스탄차에서다. 그를 보자마자 누군가가 떠올랐다. 1950년대 <왕과 나>라는 영화로 스타가 된 미국 배우 율 브리너가 되살아 돌아온 듯 순간 어리둥절했다. 부리부리한 눈, 머리카락이라고는 한 올도 보이지 않는 반질반질한 민머리, 까무잡잡한 피부, 말을 하지 않았다면 누가 봐도 루마니아 사람이었다.

우리 일행의 버스에 올라온 그는 몸이 무척이나 가벼워 보였다. 그가 한국말로 인사를 하자 나는 순간 어떻게 한국말을 배웠을까 하는 호기심까지 생겼다. 그때까지도 그가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상상도 못 했다. 그는 우리의 표정을 읽었는지 자신은 고향이 완도이며 이름은 김OO이라고 했다. 이름은 또 얼마나 순박하던지. 천생 한국 사람이었다.

이번 여행은 학회 일정이 끝난 이후에 이루어지는 관광이니 선택 관광은 물론이고, 쇼핑도 포함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여행지는 주로 유서 깊은 도시였다. 또한,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두바이의 각 나라마다 가이드도 달랐다. 그러다 보니 그 나라의 역사를 깊게 알게 되었다. 불가리아를 떠나 루마니아에서 만난 가이드는 그동안의 가이드에 대한 인식을 조금 다르게 해 주었다.

그간 코로나로 인해 관광객을 맞지 못해서인지 고향이 전남 완도라는 그는 무척이나 우리를 반가워했다. 루마니아의 역사와 함께 유럽을 설명하면서 그는 비행기가 아닌 기차로 고향을 가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다. 아내는 루마니아 인이지만 자신은 여전히 한국인이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선 고향에 대해 아련함이 묻어났다.

그는 한국인이지만 그럼에도 루마니아를 정말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다. 긴 이동 거리 때마다 그는 버스 앞자리에 앉아 루마니아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려 애썼다. 그중 루마니아를 대표하는 체조선수 나디아 코마네치의 이야기는 지금도 귓가에서 맴돈다. 마치 자신이 체험한 듯 애잔하면서도 안타까움이 배어난 목소리로 나디아 코마네치의 삶을 들려주자 일행들 모두 귀를 기울이며 들었다. 긴 시간이었음에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우리들은 모두 박수로 그에게 아니, 나디아 코마네치에게 어쩌면 루마니아인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그의 이야기에는 진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는 루마니아 마지막 여행 날, 공항으로 가기 전 먼저 우리에게 작별의 인사를 고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우리들은 아쉬움과 고마움의 박수로 그를 배웅했다. 잠시 후 길을 건 너 저만큼에서 그의 뒷모습이 보였다. 힘이 들어서일까. 허탈함일까. 아쉬움일까. 그의 축 늘어진 어깨와 한없이 무거워 보이는 발걸음과 텅 빈 등이 한없이 외로워 보였다. 집으로 가는 길,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걷는 것일까. 나도 모르게 측은하다는 생각에 “안 됐어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나만이 그의 모습을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차 안의 일행들이 비슷한 마음을 내비쳤다. 사람의 뒷모습이 저리도 많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니 놀라웠다.

그가 코로나로 인해 못했던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들려주려 얼마나 준비를 했고 쏟아부었는지 알고도 남는다. 아마도 고국의 사람을 맞고, 보내는 일은 그에게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저리 정도 많고 옹골지지 못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여전히 가이드라는 직업을 버리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눈빛과 환하게 웃어주던 그의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는지 알아차렸다.

언제일지 모르나 내가 만약 다시 루마니아에 간다면 아마도 그를 다시 찾을 것만 같다. 그래서 그날 우리들에게 미처 들려주지 못한 이야기를 마저 듣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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