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설희 수필가

 
 

밀림처럼 무성한 고춧대 사이로 이국의 소리가 들린다. 고추를 따는 중이다. 한국인은 나 혼자다. 엄마와 아빠는 새참을 가지러 갔다. 오늘 일꾼은 베트남인 5명이다. 그들은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 여자가 운영하는 인력회사에서 온 사람들로 베트남 여자의 친인척과 지인들이라고 했다. 대부분 한국으로 시집온 여자들이 초청에서 들어온 사람들로 나이도 많다. 하지만 나이가 많아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코로나 이후 외국인 일꾼 구하는 것도 힘들어졌다. 동네 사람들도 사람이 없어 힘들어한다.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만, 돈으로 사람을 구하려다 결국 인건비는 몇 년 사이 몇만 원이나 뛰었다. 덩달아 한국인 일당도 뛰었다. 한국인 일당이 비싸서 외국인을 썼는데 이제는 반대다.

외국인은 밥값도 따로 받는다. 어차피 한국 음식도 잘 안 맞고 5천 원은 인력회사에 안 주고 자기네가 가져가 밥값을 따로 주는 것을 선호한다. 그것은 우리도 편하다. 일하는 도중에 점심을 차리는 것도 일이다.

옆에서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리기도 음악 소리도 들린다. 아마 베트남 노래인 거 같다. 외국인들은 종종 자기네 나라 라디오를 틀고 일을 한다. 베트남에 있는 기분이다. 몇 년 전 호찌민으로 동생과 여행을 갔었다. 당시 우리는 베트남 음식에 푹 빠졌다. 도착하고 좋았던 기억 반, 안 좋았던 기억 반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좋았던 기억이 더 많다. 그래서 나는 가끔 베트남 사람들이 주는 간식과 음료를 좋아한다.

예전에 밭에서 베트남 여자들과 일하는데 외국인 남자가 말을 건 적이 있다. 베트남? 나는 아니라고 말했다. 얼마 있다 남자는 다시 물었다. 베트남? 나는 다시 말했다. 한국인이에요. 하지만 남자는 믿지 못하는 눈치 같았다. 남자는 우리가 일하는 밭 위에서 우리를 주시했다. 우리가 일하는 밭 위에는 고구마를 캐고 있었는데 그곳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었다.

한국인들과 일한 지가 언제인가. 동네 사람을 제외하면 한국인들과 일한 적이 까마득하다. 예전에는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들은 한국말을 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요즘은 노력도 안 한다. 어른들 말로는 한국말을 알아도 모르는 척하는 거라고 했다. 한국말을 알면 시키는 일이 많아 모른 척한다는 것이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우리가 무언가 말하면 그들은 자기네 말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한번은 친척 할머니가 외국인들과 고추를 따다 큰소리를 내셨다. 고추 말뚝 두 개 정도만 따면 한 골을 끝내는데 3시가 되니 바로 쉬러 간다고 화가 난 것이다. 만약 동네 사람들과 고추를 땄다면 마저 한 골을 끝내고 새참을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력회사에서 나온 외국인들은 시간을 딱 맞춘다. 오후 새참 시간이 되면 3시에 나와 3시 30분까지 쉰다.

그들이 그늘에서 쉬는 동안 할머니는 고래고래 욕을 하며 고추를 땄다. 그러자 엄마가 말했다. 쟤네들도 다 알아들어요. 할머니는 누구에게나 욕을 한다. 나에게도 한다. 아마 대통령 앞에서도 할 것이다. 할머니에게 욕은 고된 삶을 살아온 일상의 단어다. 나와 엄마 할머니는 외국인들이 쉬는 동안 고추밭에서 그들이 따지 않았던 고추를 마저 땄다. 5시면 그들이 가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에 온 베트남인들은 융통성이 있다. 일하는 눈치도 있다. 어쩌면 회사가 가족회사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들과 고추를 따는 건 3번째다. 나는 그들이 말을 라디오 삼아 고추를 딴다. 올해 날씨는 극단적이었다. 가뭄이어서 잎이 마를까 걱정이었는데 고추 딸 때가 되니 비가 많이 내렸다. 그래서 고추 꼭지가 많이 무르고 고추도 많이 떨어졌다.

아빠는 내년에는 고추를 많이 줄여야겠다고 했다. 내년에 가봐야 알겠지만, 고추는 다른 작물에 비해 돈이 많이 든다. 인건비라도 빨리 건지고자 생고추를 농산물유통센터에 위탁해도 박스값 상하 차비에 경매수수료까지 떼고 나면 남는 것도 별로 없다. 건고추도 마찬가지다. 기름값도 만만치 않고 소비자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음성청결고추 비닐 자루로 담으니 자루값도 만만치 않다. 제값으로 내놓으면 비싸다 안 사고 추석이 지나면 값은 뚝뚝 내려간다. 장사꾼은 그냥 가져가려고 하고 정부 수매가 마지노선인데 작년 정부 수매 가격은 근당 8550원이었다. 그래도 우리 집은 고추가 좋다고 남들보다 50원을 더 쳐 준 거라고 했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농민은 힘이 없다. 그렇게 준다며 그렇게 팔아야 한다.

가끔 고추밭에 있으면 이곳이 어디인가 생각한다. 베트남 사람들이 일하고 베트남 노래가 들리는 이곳은 어디일까. 그들의 일터에 내가 일하러 온 느낌도 든다. 그들에게 이곳의 유일한 외국인은 나다. 이국의 거리에서 미아가 된 기분이 들었을 때 멀리서 아빠의 차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가 오늘따라 더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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