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영섭 인성교육칼럼니스트

 
 

요즈음 들녘에 황금색으로 익어가는 벼를 바라만 보아도 풍요롭다. 한국음식 가운데 왕 중 왕은 쌀밥이다. 갓 지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햅쌀밥, 생각만 해도 침이 꼴이 넘어간다. 설날에도 떡국을 먹어야 진짜 한 살 더 먹는다고 했다. 밥 잘 먹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한 해를 잘 보내라는 마음인 것이다. 밥은 안부와 응원 그리고 사랑의 메시지다. 우리 민족은 흔한 인사말로 ‘식사는 하셨습니까?’ 안부 물어볼 때도 ‘밥은 먹고 지내냐?’ 아플 때도 ‘밥은 꼭 챙겨 먹어.’ 친구가 싫을 때 ‘쟤 진짜 밥맛없지 않냐?’ 심각한 상황일 때 ‘넌 목구멍에 밥이 넘어 가냐?’ 거기다가 아내평가 기준에도 ‘밥은 잘 차려 주냐?’ 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쌀이 주식의 자리를 확고히 한 것은 삼국시대라고 한다. 수많은 곡식 중에서도 쌀이 단연코 최고였던 것은 쌀밥이 내는 힘의 진가를 인식한 탓이다. 쌀밥의 열량은 100g에 145㎉이며 수분이 65% 정도이다. 수분이 많아 상하기 쉬우나 소화흡수율이 우수하고, 리신·트레오닌을 제외한 필수아미노산을 모두 함유하고 있어 식물 단백질로서는 양질에 속한다.

한국인에게 밥은 역사, 문화, 정서에 이르기까지 자부심을 갖게 만든다. 그래서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오죽하면 생겨났을까. ‘진성’가수의 ‘보릿고개’라는 노랫말에 물 한 바가지로 배를 채웠던 한 많은 밥 한 끼의 소망이 애절하다. 밥만큼은 배가 부를 정도로 먹어야 수저를 내려놓던 시절이 엊그제였다. 그러나 한국인은 밥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은 이미 옛말이 돼 버렸다.

아침밥은 모닝커피와 빵 또는 시리얼로 대체됐고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일정 기간 탄수화물, 특히 쌀을 아예 끊는 사람들도 나타나고 있다.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밥과 관련한 속담 중에 ‘제 집 찬밥이 남의 집 더운밥보다 낫다’는 말이 끼니를 걱정하던 서민들의 애환을 일러 준다. 태어나면 미음으로 시작하고 망자의 입에 쌀을 물리는 등 한국인에게 쌀은 더할 나위 없는 마음의 동반자이다.

밥과 김치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한국인의 대표적 음식으로 한국인의 역사, 문화, 정서와 함께해 온 산물이고 운명 공동체 역할을 하고 있다. 씻은 쌀을 물에 몇 시간 불려 돌솥에 앉혀 익힌 밥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입맛을 한층 돋구어준다. 잘 익힌 밥과 국, 김치, 나물, 생선 등과 함께 인체의 에너지로 전환되어 간다. 어린 시절 부모님들께서 마을 사람들과 품앗이로 모를 심고 김을 매면서 가족들에게 밥을 먹이려던 순수한 마음으로 벼를 수확하던 시절이 잊혀지지 않는 애달픈 마음의 추억이다. 밥은 한국인에게는 가장 중요한 음식이다.

우리는 밥심으로 산다는 말을 진리처럼 여기고 살고, 친근한 사람에게도 ‘밥 한번 먹자’를 인사 대신 전하기도 했다. 알고 보면 밥은 정말 위대한 음식이고, ‘밥심’은 정말 중요한 말이다. 매일 딸의 안부가 궁금한 어머니의 전화는 ‘밥은 먹었니?’로 시작된다. 요즘 끼니를 거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저 자식이 별 탈 없이 잘 지내는가를 묻고 바라는 마음이 밥이란 단어에 함축돼 있을 것이다. 어릴 때는 커서 제대로 밥값 하려면 공부해야 한다는 말을 귀가 아프게 듣고 자랐다. 밥 벌어 먹고살려면 남들보다 몇 배로 더 노력해 일해야 했다.

열심히 일하다 지칠 때면 사람은 밥심으로 사는 것이라며 밥 먹고 기운차리라 했다. 미래학자들은 식량과 에너지가 미래의 분쟁 핵심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에너지와 달리 식량부족은 우리의 생존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가 된다. 그래서 국토가 우리 못지않게 작은 유럽에서도 자국의 식량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정도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밥이 의미하는 것은 사람의 기본 생존권이다.

전문가들은 ‘밥은 곧 쌀’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쌀을 원재료로 한 다양한 식품을 개발해 소비자들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춘 고품질 식품을 만들어 국내 소비자는 물론 해외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1인 가구에 대한 쌀 소비를 늘리기 위해 밀가루를 대체할 수 있는 제품과 쌀을 원료로 한 간편 조리 식품에 대해 개발을 해야 한다.

밥은 우리의 기본 생존권에 가장 기초가 되는 일거리, 월급, 건강과 사람됨을 대신한다. ‘먹다’는 먹는 행위를 넘어 마시는 모든 행위도 포함해 쓰이는 것이 타 언어와의 큰 차이다. 그뿐이랴, 나이를 먹고, 마음을 먹고, 겁도 먹고, 욕을 먹으며, 돈, 화장, 벌레, 1등에도 ‘먹다’라는 동사가 광범위하게 쓰이는 것을 보면 아마도 우리에겐 밥을 먹는 행위가 사람 사는 모든 것을 대변해 주는 것이다.

식구(食口)는 굳이 혈연으로 묶여 있지 않아도 한 집안에서, 한 고장에서, 한 나라에서 같이 살면서 끼니를 함께 먹는 사람들이다. 우리네 정서에만 있는 정이란 단어와 함께 배고픈 이웃들과 함께 보듬어 같은 밥상에서 밥을 나누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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