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신 한국입양홍보회 하트패밀리지역대표

 
 

처음 우리가 입양을 처음 고려할 때는 신청할 때 아직 우리 딸이 태어나기도 전이었다. 입양을 신청하고 그사이 입양 법률 개정 등 우리에겐 몇 번의 어려움이 있었다. 그 어려움을 뒤로하고 어느 푸른 봄날의 추억이 된 딸과의 첫 만남! 그때는 그날만을 기다리며, 곧 만날 거라는 기대로 하루하루를 기다리다 보니 결국 그날들이 쌓여 10달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렵게 첫째 아이를 출산하고 기다린 열 달보다 몇 배는 더 길었던 기간이다. 그 기다림의 끝자락에는 조물주에 대한 투정인지 소원인지 기도인지 모르게 되뇔 지경이 되었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처럼 불현듯이 마음에 여유가 생기며, 일상으로 돌아갈 무렵, 홀트아동복지회 서울사무소 국내입양과 담당 선생으로부터 기다렸던 연락이 왔다.

최종적으로 아기를 데려가라는 내용이었다. 너무너무 기뻤고, 감사했다. ‘정말 이런 날이 오는구나!’ 통화 한 후 한동안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정말 내일인가!’ 등등 우리 부부가 그토록 기다렸고, 직접 보게 될 날을 고대했지만, 막상 보게 된다니 그날 밤에 어떻게 잠을 잤는지 설렘으로 끝이 없었다. 드디어 우리 딸 예린이를 만나는구나! 왠지 그 하룻밤에는 잠도 오지 않았다. “내일 데리러 오라니! 너무 가슴이 뭉클하게 뛴다!” 가져갈 옷가지와 기저귀 등 그동안 준비했던 예쁜 옷과 싸개 이불 등을 다시 챙기면서 그렇게 기다리던 소식에 막상 다음 날이라니 믿어지지 않는 하룻밤을 보내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밤잠도 오지 않고 꼬박 새우다시피 했다.

우리 부부는 어린 아들 영광이를 데리고 아기를 만나러 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처럼, 그간의 어려움의 끝이라도 확실히 보여주려는지, 길에 차도 많았지만, 비바람이 엄청나게 불었다. 합정동에 잘 도착해, 선생님을 만나 입양 서류를 작성하고 나니, 위탁모께서 아기를 안고 들어오셨다. 소개받고 너무 반가워 감사의 인사를 몇 번이고 했던 기억이 난다. 사진을 찍고 헤어질 때는 길러주신 정으로 많이 서운해 하셨다. 이제 우리 가족이 다 모인 첫날인데, 돌아오는 길 아이 키우는 조언을 들으러 이웃을 찾아 이런저런 아이 키우는 경험을 듣고 돌아와, 축하해 주러 온 친지들을 맞이하고, 꼭 돌잔치 하는 집같이 서로 앉아 보며 웃음꽃을 피웠다.

예린이는 낯설기도 하고, 피곤한지 손님이 다 돌아간 한참 뒤인 자정까지도 찡얼거리다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 날부터는 누구를 만나든 아기 입양 얘기로 해 가는 줄 모르게 대화를 이어간다. 하루하루 적응해 가는 딸 아이에게 읽지도 못하는 이름이 기록된 모자 수첩, 등본 등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부모인 우리는 감개무량했다. 아들은 엄마가 딸은 아빠가 이름에 지어주었다. 우리 아이들이 부모가 지어준 이름으로 마음에 든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기억하든 못하든, 아이들에게 이름 지은 얘기도 해 주다 보니, 입양에 관한 얘기도 잘해 주고 싶던 차에 입양 가족 자조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수소문하여 입양기관을 통해 지역 입양 가족을 소개받게 되었다.

뭐든 첫 단추가 중요한데 처음 만난 지역 입양 부모들은 너무 좋으신 분들이었다. 그래서인지 공개 입양 가족에 대한 긍정적 정체성을 세울 수 있었다. 현재까지도 그러한 삶으로 지금도 입양 가족을 늘 만나면 즐겁게 유지하게 되었다. 아마 누구를 만나든 입양에 대해 거리낌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이유도 그때 지역과 또래 모임이 밑거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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