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환 강동대 사회복지과 교수,행정박사

 
 

얼마 전 국가적으로 큰 불행이 있었다. 핼러윈이라는 신종 축제에 참여했던 많은 분에게 불행한 일을 당하셨고, 특히 젊은이들의 희생이 너무도 컸다. 정부는 애도 기간을 설정하고, 희생자들을 위한 분향소를 설치하는 등 슬픔을 어루만지는 행동을 그 어느 때보다 신속하게 실행하였다.

이에 대한 책임의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발방지대책에 대한 논의가 한참 진행되고 있다. 경찰의 늑장 대응, 해당 자치단체의 안일한 행사준비 등이 이번 참사의 직접적 원인 중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듯하다. 조사가 철저히 진행된다고 하니 그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이에 따라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한 사건을 빌미로 정권 퇴진집회를 개최하고, 이에 책임 있는 정치인들과 정당이 개입하였다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라 할 것이다. 아직 1년도 되지 않은 정권의 퇴진을 요구한다는 것 그리고 특정 지역에서 발생한 불행한 사건을 왜 중앙정부에 책임을 물으려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국가적 행사가 아닌 지역 차원의 축제에 대한 책임을 대통령에 묻는다면 지방자치는 왜 하는가? 라는 근본적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불행을 정치 권력을 찬탈하려는 수단으로 쓰려 하는 것이라면 결코 용서받지 못할 행동이라 할 것이다. 계획된 음모라는 항간의 주장처럼 정권 퇴진 역시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들이다.

성급하기보다는 철저히 사고의 원인을 파악하고, 이와 유사한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각종 제도와 운영체제를 보완·개편이 먼저 할 일이다. 불행을 딛고 진일보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 고인들에 대한 살아있는 자들의 예의가 아닐까 한다.

이 시점에서 국가의 역할과 책임의 범위를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국가의 역할은 고대 국가체제의 탄생부터 오늘날까지 진화를 거듭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국가는 외적으로부터 침입을 막고, 내부의 치안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전반 대공황과 제2차대전을 겪으면서 국가의 역할은 보다 적극적으로 변모하였다. 소위 케인즈경제학이라는 시장개입론적 경제학이론과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으로 유명한 베버리지보고서는 국가의 역할을 크게 확장 시켰다. 국민 삶의 안녕과 평안에 대한 국가적 책임은 ‘복지’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이를 통해 국가의 경제적 위기관리능력과 빈곤에 대한 대처역량이 크게 강화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던 것이 1973년 석유파동으로 세계 경제가 휘청이면서 복지와 국가개입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대두되었다. 소위 ‘신자유주의’ 논쟁이 바로 그것이다. 1980년대 초반 나란히 집권한 영국의 대처 총리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국가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정립을 요구하였다. 작은 정부, 규제 완화 등 민간의 역할을 강조하는 정책으로 회귀하였다. 복지의 영역도 당연히 축소되었다. 과도한 국가개입에 대한 반성과 자본주의의 본질적 가치를 새롭게 인식시킨 중요한 정치적 사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전 생애적 국가개입이 아닌 개인의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전환될 것을 요구하였다. 이후 신자유주의적 국가관은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이념적 맹주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쩌면 이는 당연한 결과이다. 국가개입의 최종적 단계라 할 수 있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간의 이념적 대결은 후자의 승리로 종결되었다. 그 승리의 원동력은 계획경제가 아닌 시장경제 우위의 결과이다. 민간의 자율적이고 창의적 활동을 결코 정부는 따라가지 못했다.

국가개입은 전체주의 혹은 독재정치를 낳을 수밖에 없다. 국민의 안전, 평안 등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된 국가개입은 종국에는 우리 삶의 깊숙한 곳까지 통제하려 들 것이다. 언젠가 우리를 배부른 돼지로 만들려 할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전근대적 의미의 자유방임적 국가를 추구하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 국가는 우리 국민의 안전과 번영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사건의 규모를 통해 정부의 역할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기보다는 그 성격을 통해 국가 역할 범위와 한계가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듯이, 참사를 안전한 사회로 만들 발판으로 삼을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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