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설희 수필가

 
 

모임 단톡방에서 문광저수지 풍경을 보니 가고 싶어졌다. 문광저수지는 우리 집에서 차로 30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다. 하지만 핑계가 많아져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아무 일도 없던 오후, 즉흥적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새삼 가자 한마디면 갈 수 있는데 잠깐의 결심이 힘들다.

운전대는 둘째 동생이 잡았다. 아빠는 일이 있어 가지 못하고 엄마, 셋째 그리고 두 살배기 조카 산이 함께 갔다. 시간은 오후 3시. 운이 좋으면 멋진 노을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문광에 도착하기도 전에 가을을 만끽했다. 음성도 주변이 산이지만 괴산은 산이 깊어서 드라이브하기 좋았다. 붉고 노란 잎들이 자신들을 봐달라 야단이다. 우리 가족은 잎 하나하나에 감탄하며 사진을 찍기 바빴다. 도착하기 5분 전. 문광저수지에서 빠져나올 듯한 차들을 보니 역시 전국구 관광지다. 며칠 전에 <6시 내 고향> 방송 프로에 나와 사람들이 더 많이 온 듯했다. 그것마저 즐거웠다. 하지만 점점 갈수록 차가 막히고 도착하기 전에도 갓길에는 이미 주차장이었다.

나는 문광저수지에 와본 적이 있어 이 정도 주차난은 익숙했다. 내비게이션은 여전히 5분을 가리켰다. 10분 전에도 5분이었다. 마치 명절 고속도로 같다. 휴일이라 사람들이 더 많이 온 것 같다. 적어도 5시 전에는 출발해야 하는데 초조했다. 산이도 답답한지 칭얼거림이 늘었다. 우선 입구까지만 가보자고 생각했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집으로 가기로 했다. 먼 곳도 아니니 다음을 기약했다.

문제는 유턴이다. 입구에 겨우 도착하고 앞으로 계속 나아갔지만 입구 앞도 꽉꽉 밀리기 마찬가지다. 더 이상 차를 세울 수 없는 곳까지 도착하자 차가 조금 뚫리기 시작했고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되돌아가는 동안 멀리서나마 문광저수지를 마음에 담았다. 저수지에 잔잔히 비치는 산이 역시나 아름답다. 하지만 이대로 집에 가는 게 아쉬워 멀리 돌아갔다.

설성공원이나 갈까. 둘째 동생이 말했다. 동생도 이대로 집에 가기 아쉬운 듯했다. 설성공원 옆 음성천 산책로면 산이가 걷기 좋을 것이다. 요즘 산이는 걷기에 푹 빠졌다. 특히 삑삑이 신발을 신고 걸으면 더 신이 나는 듯했다. 결국 돌고 돌아 집에서 10분이면 오는 설성공원을 1시간 넘게 걸려 왔다.

오랜만에 온 음성천 산책로는 삭막했다. 전에는 코스모스가 간간이 피어 있었는데 지금은 흙밭이다. 산책로를 걷고 공원으로 들어와 나무 아래에서 낙엽을 만끽했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배운 방법으로 핸드폰 카메라 앞에 낙엽을 뿌리며 산이 사진을 찍었다. 산이의 까르륵 소리에 우리 가족의 입도 방긋방긋 이다. 우리에게 이곳이 문광저수지다.

집으로 돌아가기 차에 타기 전, 입이 심심해서 미니 붕어빵을 사 먹었다. 천원에 3마리. 슈크림붕어빵과 팥붕어방을 각각 2천원어치 샀다. 우리가 먹는 것을 보고 산이도 보채길래 부스러기를 조금 주니 눈이 번쩍인다. 처음 먹어보는 맛이니 깜짝 놀라는 게 당연하다.

집에 돌아오니 가까운 곳을 새삼 멀게 왔다. 우리는 이날에 대해 아주 오래 이야기할 것이다. 그때쯤이면 산이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할 것이다. 우리는 길이 막히면 문광저수지 이야기를 할 것이고, 산이가 차에서 보챈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러다 충도리로 돌아가 충도리저수지를 본 이야기를 할 것이고 음성천 이야기를 할 것이고 오늘 먹은 붕어빵 이야기를 할 것이다. 문광저수지에 가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한 추억을 만들었다. 보는 것만 여행이 아니다. 계획대로 그곳에 갔더라면 더 다른 추억을 만들고 왔을 테지만 오늘의 추억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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