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신 한국입양홍보회 하트패밀리지역대표

 
 

지난 십여 년간 사회에서 입양을 바라보는 시선과 여론의 동향은 긍정적인 기류에서 부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일례로 코로나 기간 화재의 영화인 송강호, 강동원 주연의 브로커를 보더라도 전개된 시나리오의 모티브가 입양 대기 중인 아동을 밀거래하려 빼돌리고 생모가 아이를 포기하도록 강요하며, 정부는 이런 일에 방조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편견으로 영화는 시작하는데 이는 사실 사회의 인용된 분위기에 편승한 면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잠시 생각해 보면 생모가 자기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이 잘 조성되면 애초에 입양으로 아이를 맡길 이유가 없다는데, 그 생각이 닿게 되면 생각할 수 없는 편견인 것을, 미혼모에게 실질적으로 가정을 꾸릴 지원과 사회적인 부정적 낙인이 없다면 입양할 이유도 없음은 현재 입양 가족과 부모 된 사람이라면 당연하게 몹시 바라는 바일 것입니다. 아이가 원가정을 잃고 입양 보내게 되는 대부분은 단순하게 기를 수 없거나 기를 마음이 없어서가 아닌 개인적 사회적 요인에 의해 어렵고도 복합적 산물로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선택입니다.

아마 입양기관이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입양 서류를 임의로 조작하거나 입양을 주선하거나 아이와 생모 사이를 억지로 갈라놓는다면 이는 명백한 범죄 행위로 사법 기관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현 상황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생겨도 안 될 일입니다.

영화에서처럼 입양기관이 아동을 마음대로 빼돌릴 수는 없습니다. 이는 모든 사회복지기관이 정기적으로 정부의 감사를 받기 때문입니다. 입양기관도 당연한 절차로 정기적인 감사를 받습니다.

한국의 입양이 6·25전쟁으로부터 시작된 사실에서, 아동을 위한 박애의 목적이었음을 기억해두어야 합니다. 가정을 잃은 수많은 아이에게는 가정의 필요와 고아라는 버거운 낙인으로 인한 사회 진출의 어려움에서 탈출시켜 주는 당시에는 가히 획기적인 아동복지의 사례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이는 입양 지지자들이 국내를 벗어나 국외에서라도 사랑으로 키워줄 가정을 찾게 되었고 잘 자라서 더 나은 기회를 얻게 하려고 책임감 있게 대응한 결과라 하겠습니다. 세월이 지난 지금의 잣대로 어려웠던 그 시절을 재단하려 한다면 무리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에게는 입양은 가장 합리적 대안입니다.

만약 이 땅에 입양이 없다면 많은 아이가 고아로서 사회적 낙인을 안고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가족이라는 평범하지만 든든한 아이와 비교했을 때 사회 진입의 엄청난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도 보육원에서 자라 퇴소하는 청소년을 ‘보호종료아동’이라 부르는데 이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으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별은 단지 가족의 재정과 사회적 지원을 받지 못해 좋은 교육과 좋은 직업의 기회를 경험할 수 없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편으론 서양의 흑인 인종 차별의 경우를 떠올리게 됩니다. 가문 간 결합을 중요시하는 결혼 문화만 보더라도 고아라는 이유가 사회적 냉대로 이어지는 경우는 쉽게 발견하게 됩니다. 한국에서 고아의 대학 진학률은 3~5%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교육의 기회가 커져 증가하고 있지만, 일반 가정보다는 현저히 뒤처진다는 사실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같은 통계에서 서양 가정에 입양된 대략 70%의 한인 입양인이 4년제 대학 이상의 교육을 받았다고 발표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입양 부모가 되는 길은 매우 엄격하면서도 많은 준비가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건강 검진부터 시작해서 재산 조회, 범죄경력 조회, 약물 중독, 알코올 중독 검진 등 100여 가지의 검사로 병원, 은행, 경찰서, 관공서를 수없이 다녀야 하고 입양 동기에 관한 에세이를 써야 하는 등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러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가 있는데 바로 사랑으로 맞이할 가족을 만나는 기쁨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쓴 글을 마지막으로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지면에 옮겨봅니다. “나는 아빠가 두 명이다. / 왜냐하면, 나는 입양했기 때문이다. / 나는 아빠가 두 명이 있어서 좋다. / 다른 친구는 한 명인데 나는 아빠가 두 명이다. / 나는 키워주시는 우리 아빠를 좋아한다. / 나와 늘 함께해 주셔서 우리 아빠가 좋다. / 정말 끝내준다! 우리 아빠는 참 잘하신다. / 우리 아빠가 함께해 주시니 재밌다. / 좋은 점은 잘 놀아주신다. / 나를 놀아주시니 좋다. / 나는 우리 아빠가 좋다. /우리 아빠는 나한테 좋은 분이시다!” --필자의 딸, 김예린 글, ‘우리 아빠 최고!’--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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