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설희 수필가

 
 

월드컵 하이라이트 경기에서 이란 선수가 페널티킥을 앞두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경기는 6:1 상황. 잉글랜드가 6으로 앞서가고 있었고 경기도 곧 끝나가고 있었다. 이란 선수가 골을 넣는다고 해도 경기는 승패는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선수는 지금 경기가 원점인 것처럼 간절히 기도했다. 선수의 소원을 들어줄 신은 어떤 신일까.

선수의 기도에 마음이 쓰였던 건 이란 히잡 시위 뉴스를 봤기 때문인지 모른다. 히잡을 바르게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성이 체포되어 죽음으로 돌아온 사건은 옛날 우리 박종철고문치사사건을 떠오르게 했다. 이 사건으로 이란은 히잡 반대 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이것은 여성의 문제로만 인식하지 않고 자유화의 도화선이 되고 있다. 그래서 히잡 반대 운동 지지 선언을 했던 이란 유명인에게도 사형선고가 내려졌고 월드컵에 출전하기로 되어 있던 이란의 선수도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이슬람 종교에 잘 모른다. 이슬람은 기독교와 같은 하느님을 믿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다. 이슬람은 아랍어 신에게 복종이라는 뜻으로 하느님에게 복종함으로써 마음의 안식과 평화를 얻는다고 한다. 나는 이 뜻이 불교의 하심(下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란의 시위를 보면 하느님의 가면으로 복종을 강요하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프다. 이슬람 사람들은 율법을 잘 지키기로 유명하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율법에 따라 술과 돼지고기가 들어간 음식은 반입 금지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같은 율법을 의지하고 그 신념으로 시위에 참여하는 것이다.

선수의 골은 성공했고 경기는 6:2로 종료되었다. 하지만 나는 6골보다 한 선수가 넣은 2골이 더 크게 느껴졌다. 선수의 이름은 메흐디 타레미. 그는 국가 제창은 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나라를 사랑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골을 넣었을 것이다. 그 골에 반역이 있을 수가 있을까.

일주일 뒤 우리나라와 가나의 경기가 있었다. 경기는 0:2 상황에서 조규성의 멀티 골로 2:2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놓았지만 아쉽게 졌다. 하지만 이 골 덕분에 우리는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의미 없는 골은 없다. 경기에 지더라도 말이다.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과는 삶 속의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이벤트일 뿐 선물을 받지 못한다고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사라지는 게 아니다. 진다는 것은 단순한 결과일 뿐 응원했던 마음과 열심히 뛰었던 선수의 노력은 사라지는 게 아니다. 가끔 이런 평범한 진리는 잊고 산다.

지는 게 무서워 아무것도 안 하는 요즘이다. 12월이 들어서자마자 날씨는 순식간에 겨울이 되었다. 몸도 많이 움츠러든다. 가만히 이불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세어본다. 세어만 본다. 하지만 선수들의 경기를 보니 나는 게임을 뛰기도 전에 포기하는 선수처럼 느껴졌다. 12월 3일 포르투갈의 경기.

슈퍼컴퓨터는 우리가 이길 확률이 19.3%라고 했다. 미국 통계 업체인 파이브서티에잇에서는 우리가 16강에 진출할 확률은 9%라고 했다. 우리가 16강에 진출하려면 포르투갈을 반드시 이겨야 했다. 이긴다고 해도 16강에 진출할 보장은 없었다. 우리의 성적은 1패 1무. 1승을 얻기 위해서는 우승 후보이자 피파 랭킹 포르투갈을 이겨야 한다.

나는 따뜻한 곳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경기를 보았다. 간절한 마음도 없었다. 지면 지는 거고 이기면 이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길 수 있을까? 흐름은 우리에게 있어 보였지만 경기 5분 만에 득점을 내줬다. 다행히 만회했지만, 반드시 승리해야만 16강에 갈 수 있다. 그것만 중요한 것도 아니다. 골 득실도 중요했다.

경기는 대한민국의 승리. 슈퍼컴퓨터도 미국의 통계 업체도 예상하지 못한 승리였다. 생각해보면 1%의 가능성만 있더라도 불가능은 아닐 것이다. 황희찬의 골을 보며 조규성의 골이 떠올랐다. 비록 졌던 경기지만 무의미했던 골은 아니었다. 이란의 메흐디 타레미 골도 마찬가지다.

나도 승패와 무관한 골을 준비해야겠다. 질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의미 없는 골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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