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설희 수필가

 
 

아직 공기가 찬 어느 봄날이다. 카페에서 글을 쓰는데 초등학생 고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들어왔다. 남자아이 2명, 여자아이 4명. 아이들은 제각기 음료를 주문했다. 초등학생 아이들끼리 카페라니,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던 시절(당시는 국민학교)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내가 처음 카페에 갔을 때가 스무 살쯤이었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읍내에는 카페가 없었다. 다방뿐이었다.

여자아이 한 명이 마카롱 한 개를 주문했다. 다른 아이가 음료는 안 마시냐고 묻자 음료는 필요 없다고 했다. 나도 목이 마를 텐데 생각했다. 무슨 날인 것 같았다. 아이 무리 중 하나가 계산했다.

카페는 테이블이 3개와 실내텐트 하나가 있었다. 남자아이들은 내가 있던 테이블 건너 건너에 앉았고 여자아이들은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아이들은 뭘 보는지 텐트 안에서 까르륵까르륵 웃었다. 마치 새끼 참새들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지저귀는 거 같다. 웃음소리가 계속 되자 남자아이 하나가 텐트 안을 살피며 물었다. 뭐가 재밌는데?

초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언제부터였을까. 같이 놀던 남자아이들은 고학년이 되자 여자아이들과 놀지 않게 되었다. 서로 말이라도 섞으면 좋아하는 게 아니냐 놀려댔다. 우리 학교는 시골 학교라 모든 학년이 한 반밖에 없었고 6년 내내 같은 반이었다. 그리고 6학년이 끝날 무렵, 교실에는 작은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 변화를 나는 나중에서야 알았다.

어린 나는 남자를 좋아하는 게 부끄러웠다. 연애는 어른들이 하는 것이고 연애를 하면 그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 줄 알았다. 오래전 이야기다. 그때는 대부분 대학을 졸업하거나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 결혼을 했다. 방송에 나오는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좋아함의 끝은 결혼이었다.

텐트 안에서 다시 요란한 웃음소리가 났다. 여자아이들은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으며 노는 듯했다. 한 여자아이가 과장되게 웃자 주변 여자아이들이 한마디씩 한다. 남자아이들도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다가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아이들 웃음소리도 들렸다. 잠시 후 남자아이 한 명과 여자아이 한 명이 텐트에서 나와 비어있는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했다. 바로 내 옆 테이블이다. 그런데 왜 내 마음이 달아오르는 걸까.

아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둘은 조용히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여자아이가 남자아이 등을 때렸다. 남자아이는 아프다 소리쳤지만 그 목소리는 마카롱처럼 달콤한 소리가 밴 투정처럼 느껴졌다. 그 소리에 아이들은 텐트에서 나왔다.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 이야기를 내뱉는다. 소리와 소리가 섞여 누가 누구의 목소리인지 모르겠다. 새끼 고양이들의 싸움처럼 들리기도 했고 합창처럼 들리기도 했다.

아이들은 오늘은 어떻게 기억할까. 아이들은 이날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날을 기억할 수도 있다. 이들의 추억 사진에 우연히 찍힌 기분이다. 나는 이들에게 행인에 불과하다. 하지만 행인은 기억한다. 아직 공기는 차지만 따뜻한 볕이 창 사이로 스민 어느 날, 풋풋하고 빛나던 한때의 봄을. 창가로 들어온 햇살을 만끽하며 나는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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