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순 수필가

 
 

봄비가 내리는 아침, 마음이 부산해 졌다. 뜨거운 커피와 물을 보온병에 담고 컵라면도 챙겼다. 그리고 지인에게 전화를 했다.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받는다. 비만 오면 약속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렇게 마음이 동한다. 어느 누군가는 참 청승맞다고도 하지만 비가 오는 날이라야 느낄 수 있는 순간을 놓칠 수는 없다. 겨울 동안에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봄이 오길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비는 밤부터 내렸다. 오늘은 비가 너무 억세게 쏟아지지도 않고, 적당하게 내린다. 이렇게 적당히 내리는 빗속에서 만나는 숲의 정취는 남다르다. 봉학골로 들어서는 어귀에 용산저수지가 스쳐 지나간다. 비가 오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우리뿐이 아닌가 보다. 저수지 물 위로 천둥오리들이 무리를 지어 노닐고 있다. 주차장에는 승용차들도 없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 산책을 하려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런데 빨간색 관광차가 주차장을 조금 벗어난 산책로를 향하는 한 쪽 길에 세워져 있다. 아마도 어느 회사에서 봄놀이를 온 모양이다. 대부분 등산복은 입을 것을 보니 등산을 위해 온 듯 했다. 그런데 비가오니 등산은 포기 했는지 평상 옆에 천막을 치고 음식을 먹으며 즐기는 분위기다.

우리는 산책로가 시작되는 넓은 공터의 지붕이 있는 평상에 자리를 잡았다. 비가오니 파카를 입었는데도 선득하다. 우선 요기를 하고 숲을 걷기로 했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도 라면 국물은 뜨겁지 않고 따뜻할 뿐이다. 적당한 온도는 이런 걸 말하는 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겨울이 끝나가는 날, 비가 오는 숲에서 라면을 먹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맛과 온도다. 두 손으로 컵라면을 감싸니 마음까지도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이렇게 적당하게 따뜻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자리 잡은 평상 근처에 화장실이 있어서일까. 원색의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리를 힐끔거리며 지나간다. 빗속에서 짜금거리며 라면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중에도 재잘대는 우리가 이상해 보였나 보다.

속도 든든하게 채웠으니 이제 우산을 받쳐 들고 산책로를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관리실의 왼쪽 편에 있는 데크길의 산책로를 택했다. 느릿느릿 걷는 중이다. 비오는 숲은 적막하기만 하다. 새들도, 바람도 잠이 든 듯 고요하다. 다만 우산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만이 요란하다. 빗소리에 대화를 해도 잘 들리지 않아 각자 조용히 걸었다. 그리도 뾰족하던 소나무와 잣나무도 오늘 만큼은 순한 모습으로 다소곳하고, 지난겨울 잎을 모두 떨군 느티나무, 참나무, 오동나무 등은 온몸으로 물을 받느라 바빠 보였다. 어쩌면 조용하지만 봄을 맞느라 제일 분주한 것은 숲의 생명들이란 생각이 든다.

사방댐 부근에 다다르니 어느새 비는 잦아들고 있었다. 단단하기만 하던 철다리도 비에 흠뻑 젖으니 야들야들한 느낌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에 유혹 당하면 안 된다. 발을 잘못 디뎠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하산 길로 접어들었다. 단풍나무와 소나무들이 즐비한 길이다. 야자매트길 위로 몇 해 동안 소나무가 떨군 잎들이 빼곡하다. 머지않아 화려하게 피어날 야생화 식물원을 지나는 중이다. 지금은 침묵의 정원이다. 물론 땅 밑에서는 오늘 같이 비가 오는 날이면 소란스러울 테지만 말이다. 자연 학습관을 지나 잔디광장을 지날 쯤 비가 그쳤다. 주차장에 도착해 보니 어느새 봄나들이를 온 사람들도 관광버스도 온데간데없다. 그 사람들은 어떤 느낌으로 봉학골을 기억할까. 숲길을 걸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일었다. 하지만, 봉학골은 어떻게 즐기든 분명 또다시 오고 싶게 만드는 치유의 숲이니 분명 다시 찾게 되리라.

봉학골은 요즘, 변신중이다. 지금은 한창 공사 중에 있지만 머지않아, 봉학골 입구의 우측으로 지방 정원과 레포츠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제 봉학골은 쑥부쟁이 둘레길과 더불어, 산림욕장, 벚꽃이 만발한 임도길, 또 다른 명소가 될 지방 정원과 레포츠단지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을 것이다. 작은 도시에 이렇듯 아름다운 치유의 숲이 있다니 음성은 분명 축복의 땅이 분명하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