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불광동 연신내에서 신태호씨(41세)를 만난 것은 지난해 6월이었다.
그는 일찍이 자수성가하여 큰 사업체를 경영하고 있었고 1년에 2-3번씩 해외여행을 하는 등 순탄일로에 있었는데 IMF가 시작되기전 갑자기 사업이 부도가 났으며 수억원의 부채까지 안고 있다고 했다.
그를 안타깝게 생각한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지금의 장소에 조그만 음식점을 냈다. 필자는 그 집안의 건강과 산소를 점검한 후 깜짝 놀랐다.
’97년도에 조부모의 산소를 이장했는데 수맥이 †자로 흐르는 곳에다 잘못 이장을 한 것이다.
이장을 극구 고집하였던 형(당시 경찰 공무원)은 이장한지 1년만에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었고 사촌들도 모두다 사업이 망했다는 것이었다. 수맥이 없던 산소를 이렇듯 수맥이나 지전류를 확인하지 않고 잘못 이장을 하면 이와같이 해를 당하게 됨으로 신중을 기할 것을 다시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며칠 후 대전시 변두리에 위치한 산소를 찾아갔다. 마침 그곳에는 단재 신채호선생의 생가가 잘 보존되어 있었고 신씨도 단재 선생의 집안이었다.
차안에서 그는 필자에게 ‘남 선생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믿겠다’며 1차 방문때 가족 사진을보고 ‘큰 아들의 무릎이 많이 아프겠다’고 했는데 건강하게 군대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했었다.
그런데 얼마전 아들의 면회를 신청해 놓고 기다리는데 아들이 목발을 짚고 절룩거리며 나오기에 깜짝 놀랐단다.
산소에 도착하니 신씨의 숙부(78세)가 잡초를 뽑고 계셨다. 수맥 산소라 믿기지 어려울 정도로 잡초하나 없이 잔디가 잘 가꾸어져 있었다. 신씨의 말로는 숙부가 30여리길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와 이장한 것을 한탄하며 돌보고 계신다고 했다.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을 호스에 연결하여 잔디에 물을 줄 수 있도록 설치하여 놓고 하루 서너 차례씩 물을 뿌려 준다고 했다.
그야말로 지극정성 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거늘 이토록 정성을 다하는 후손이건만 야속하게도 조상님은 전혀 받아들이지를 않는 듯, 수맥이 없던 좋은 곳에 잘 계시던 때만 생각하고 나쁜 자리로 이사 시킨 후손들에게 노여움이 대단하신 듯 했다.
산소의 수맥을 확인하고 재차 이장을 권유하자 노인은 펄쩍뒤며 노발대발 이었다. 신씨의 사촌들도 저마다 각각 수맥탐사가와 지관들을 데리고 다녀갔다는데 ‘누구는 수맥이 없다하고 누구는 수맥이 있다 하고 도대체 이느 장단에 춤을 추느냐’는 노인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서울에서 만난 어느 지관은 수맥을 몰라 어려움이 많다며 ‘수맥을 배우려고 3년을 좇아 다녔는데도 수맥 탐사봉이 손끝에서 전혀 움직여 주지를 않는다’며 하소연함을 보았다.
“수맥을 모르는 지관은 절대로 남의 산소를 잡아 주어서는 안된다. 남의 집안을 망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자료제공 : 수맥전문가 남기인
<수맥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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