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옥<무영문학회원>

출근하는 아파트 위층부부를 만났다. 다정한 아빠와 함께 엄마 품에 안긴 아기는 방실방실 웃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이사 온지 얼마 안 되는 부부를 두 번 만나고도 잘 알아보지 못하는 나에게 상냥하게 인사를 하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얼마 전이다. 먼저 살다 간 아파트 위층새댁을 처음 만났을 때다. 수심이 가득한 얼굴만 보아도 말 걸기가 불편했지만 먼저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주고 받다보니 우리 위층새댁임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밤 늦도록 위층부부가 싸움을 하는 바람에 단잠까지 설쳤다. 와장창 물건 깨지는 소리, 쿵쿵대는 발소리, 새댁의 울부짖는 쉰 목소리는 고요한 밤의 침묵을 깨트렸다. 무슨 일로 밤낮 싸우는지 모르지만 아래층에서 인내의 한계를 느꼈다. 이사가고 싶은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남의 사생활에 참견하여 부부싸움을 말릴 수가 없어서 잠자리에서 일어나 촛불을 켜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서도 예감이 불길했다. 조금 있자니 비명소리가 들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위기를 직감하고 아파트 경비실 인터폰을 눌렀다. 경비원 덕분에 바로 조용했으나 불안한 마음은 가라앉질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위층새댁과 눈이 마주쳤다. 조용히 새댁한테 다가가 손을 잡으며 밤에나 싸우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통사정을 했다. 실업자인 남편은 집에 있으면서 날마다 병 소주를 마셔대고 눈만 뜨면 갖은 욕설로 모진 매를 맞고 살면서 생계까지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미안해진 나는 그럴수록 남편을 이해하고 용기를 주면서 잘 해주라고 했지만, 안쓰러운 새댁을 보니 가슴만 답답해졌다.

우선 부부가 일자리를 구해 먹고사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았다. 수소문 끝에 새댁을 식당과 가게를 다닐 수 있도록 주선했으나, 식당은 장사가 안 된다고 나오고 슈퍼마켓은 힘들다고 한 달만 되면 그만두었다. 한 달간 잠잠했던 위층 부부싸움은 점점 잦아지고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렀다. 번잡한 상가에서만 살다가 깨끗하고 조용한 아파트 생활을 동경했으나, 이런 고충을 겪으면서 생각하니 그들이 일터에서 열심히 일을 해서 의식주라도 해결했으면 좋겠는데 갈수록 태산이었다. 위층부부에게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가까이 지내다가 마음을 열게 하여 많은 대화도 해 보았으나 부질없는 일이었다.

나의 삶 안에서 부부의 소중함과 고마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평소에는 정상인 그는 병술로 만취하면 이성을 잃고 습관적인 행동을 자제하지 못함을 알게 되었다. 공동주택에서 공중도덕과 기본적인 예의는 나의 바램일 뿐, 통하지 않음을 느끼면서 알콜 중독자인 그의 치료가 시급할 것 같았다. 새댁과 상의해도 무분별한 고집과 안하무인인 신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해결책이 나오질 않았다.

지금 나는 남편과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가 없다. 주어진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성실하게 일하면서 한 생애를 마감한 남편에게 더 잘 해주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가슴을 저리게 한다. 이 세상에는 부부가 서로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있을 때 잘하라.’ 는 유행가 가사의 구절을 실감하면서 모든 부부가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면서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에서 인생은 그리 길지 않음을 살아가면서 몸으로 느끼게 된다. 때때로 소중한 남편과 아내가 내 곁에 있는 고마움을 잊고 사는 때가 많을 것이다. 너무 편하게 가까이 지내는 부부간의 배려를 잊기 쉽지만, 평생 동반자의 인연을 감사하며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살아갈 때 화목한 가정의 평화와 행복이 있지 않을까.

그 후 경비실 아저씨를 만난 것이다. 위층부부가 싸우던 날 밤중에 전화를 걸어서 미안하다는 나에게 경비원은 나 때문에 새댁이 살았다고 한다. 정신이 아찔해졌다. 어린 아이는 울어대는데 새댁을 방에 가둬 놓고 위험한 일이 벌어지려는 순간, 경비원의 전화벨 소리에 경찰인줄 알고 경비실로 뛰어내려온 것이다. 경비실에서 밤새도록 울면서 신세한탄을 했다는 그를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하고 저려왔다. 더 이상 못살겠다고 이혼을 서두르는 새댁에게 자식을 생각해서라도 참고 살라고 위로했지만 이혼을 한 것이다.

오늘도 열심히 일하며 행복하게 사는 위층부부와 이곳 젊은 부부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며 희망을 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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