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득<풋내들 문학회>

해마다 겪는 우리 집 행사다. 산을 등지고 사는 탓에 가을이면 온갖 낙엽들이 마당 구석구석 쌓이게 마련이다. 감나무의 잎까지 합치면 낙엽을 감당하기 어렵다.
시월의 마지막날 큰 맘 먹고 낙엽을 긁어모아 불을 놓았다. 낙엽 타는 냄새가 이렇게 구수한지 미처 몰랐다.
욕심 없이 하늘과 땅에서 주는 대로 살아가는 자연의 향기가 아닐까 싶다. 보물처럼 묻어두었던 추억도 함께 타고 있었다.

벌써 십년이 지난 추억이다. 결혼생활 38년만에 처음으로 속리산 단풍놀이에 나섰다. 산기슭이마다 “단풍잎이 어찌나 곱던지, 나도 모르게 여보 저 단풍잎이 마치 노을처럼 곱다.”면서 슬쩍 잡아 주는 손이 타는 단풍잎처럼 뜨거웠다.

요즘은 늙은 부부끼리 여행도 잘도 다니고 손목도 잡아 주지만, 그 시절만해도 부부가 손잡아 주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유교사상이 투철한 남편이 유난히 다정했던 생각을 되새겨보면, 남편은 자기 몸이 불치병에 걸려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다음날은 공주 계룡산을 갔었다. 절 입구의 목로 주점에서 홀로 앉아 술을 마시는 남자가 눈에 띄었다. 오십대 초반은 되었을까? 나는 무심히 지나쳤다.

남편은 혼자말로 인생은 초로와 같은 것이라고 했다.
방금 본 남자가 유난히 쓸쓸해 보인다며 짝 잃은 기러기 같다고 한다. 그때는 한 귀로 듣고 흘려보냈다. 초로의 그 남자 외로움을 술에 타 마시고 있다는 것을 남편은 알았던 것인가? 남편 역시 술을 자주 마셨다.
그때마다 아린 속을 싸한 소주한잔으로 씻어 내리며 밀봉된 한숨을 토해냈을 것이 아닌가!

40년을 함께 살았어도 남편의 건강을 챙기지 못한 내가 무슨 할말이 있을까! 내자신이 원망스러워 회한에 잠길 때마다 남편의 빈자리와 쓸쓸함이 겹쳐 뼈에 사무친다.
남편은 열네살부터 대종손이라는 굴레를 지고 자식들 오남매의 뒷바라지 해가면서 때로는 보람도 있었겠지만, 그 짐이 힘에 겨워 가슴앓이 할 때도 많았다. 평생 궂은 일만 하다가 바람처럼 사라져간 남편과의 아픈추억 상처도 낙엽과 함께 태워보지만....

가을 단풍이 물들 때마다 새겨진 그리움은 더욱 선명하다. 더구나 낭만적인 남편도 아닌데 “당신이 노을이야”하던 그 말 한마디는 내가슴속에 영원한 불씨로 남아있다.
몇 해만 더 살았더라면... 이제는 손자 손녀들도 바르게 자라서 고등학교, 대학을 다닌다. 엊그제 서울 사는 외손녀가 이화여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나 혼자 듣고 있었다. 기쁘다 못해 콧등이 시큰해 졌다.

시월의 마지막날 나는 그이와 함께 단풍놀이를 했다. 어딘지는 모른다. 다정히 손을 잡고 걸었다. 남편의 어깨에 기대보며 황홀한 단풍잎에 취해 입을 다물 수 가 없다. 귀에 무슨 소리가 나는 듯했다. 깜짝 놀라 불을 켜 보니 자정이 넘은 2시였다.
현실이 아닌 꿈을 꾸고 있엇던 것이다. 역시 나 혼자였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아오는 병이다. 마음은 벌서 영동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그렇다고 심장이 뛰는 것도 아니것만, 강릉 바닷가에 앉아 가을 병을 치료받는 여인들이 있을 것이다. 회한접시 쓴 소주 한잔에 고독을 삼키고 있겠지.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행여 양떼가 아닌가 상상을 할 것이 아닌가.

또한 누군가 마주앉아 넋두리만 들어준다면 그 상대가 여자면 어떻고 남자면 어떠랴 늙었다고 그런 권리마저 포기한다면 이 풍진 세상을 어찌 살아 갈 것인가. 하지만 역시 우리는 먼저 떠난 사람의 추억을 통해 그리워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아닐까.
언제나 아름답고 정숙한 노을처럼 살았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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