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신

가장 무서운 것이 불신이다. 몇 달 전부터 가슴에 통증이 와도 참았다. 할 수 없이 약국에 가서 약을 지어다 먹어도 그때 뿐이다.
나는 음성읍 소재 C병원으로찾아갔다. 과장님 이번에는 내시경 검사를 해 보았으면 한다고 의논을 하니까 초음파 심전도 검사를 한다고 한다.
다른 검사는 끝내고 다시 죽을 힘을 다해 수면 내시경이 아닌 일반 내시경을 마치고 나니 1시 20분 배가 고프다 못해 속이 쓰려 죽을 지경이다.
간호사가 검사한 서류를 주면서 원무과에 가서 돈을 지불하라고 한다. 한 남자가 서류를 받아 놓고 컴퓨터를 두드리더니 할머니 검사비가 모두 9만 몇백원이라고 한다.
난처하기 짝이 없다. 사방 둘러봐도 아는 사람은 없고 심사숙고 끝에 허연 머리를 숙이고 담당 과장님께 인사를 공손히 하고 가져온 돈이 진찰비도 오천원이 모자란다니 약값하고 차는 타고 가야 되니까 죄송하지만 삼만원만 빌려주시면 내일 돈을 갖다 드린다고 사정을 했다.
과장 하는말이 곤란한데요 하더니 간호사들도 똑같은 말이 할머니를 어떻게 믿느냐고 한다.
불신이 이런 것이구나 하면서 생각했다.
할머니 같은 분이 하나 둘이냐는 것이다. 그럼 그분들은 병을 고치러 온것이 아니라 도둑질을 하러 온 사람들인가?
사람은 사람끼리 이어지고 만남으로 끈이되어가며 사는것이 사회가 아니던가. 세상이 이렇게 삭막해 가는 근본 원인이 어디에서 부터 생긴 것일까. 모두가 반성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그러나 내 처지가 그날따라 너무 비참하고 기가 막힌다. 주민등록증과 의료보험카드를 맏겨도 안된다니 눈시울이 뜨거워 진다.
참을수가 없다. 병원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를 하고 거울속에 내 얼굴을 보았다. 아무리 봐도 돈 삼만원 떼먹고 도주할 사람은 아닌데 거머리가 아니니까 속을 뒤집어 보일수도 없는 것이고...
마음을 진정하고 전화번호가 생각나는 집부터 총무댁으로 걸었다. 무슨 날벼락같은 소리 강릉으로 놀러갔다고 한다.
음성에 아는 집이야 농약방 옷가계 슈퍼등등 있지만 수첩을 안가지고 갔으니, 다시 생각나는 곳 내가보 체험실 김회장댁으로 전화를 했다.
체험실에 박선생 이었다. 김사장은 있느냐고 묻자 수안보를 갔다고 한다. 그분이야 말로 집에 있으면 오토바이를 타고 돈을 갖다 줄 분이다.
난감하다. 박강사가 하는 말이 아주머니 주봉리에서 글쓰시는 분아니냐고 묻는다. 그때서 박선생 내가 돈 삼만원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어디냐고 한다.
여기는 병원이라고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빨리 오시라고 한다. 감격한 나머지 다리에 힘이 쭉 빠진다. 세 번씩이나 만난 과장과의 환자, 간호사 끼리도 신뢰를 못받고 불신을 당했는데 그 강사는 더구나 중국 교포였다. 나를 보면 몇번이나 봤다고 정말로 고마웠다.
가기전에 원무과에서 검사비 미수금 오천원 영수증을 해달라고 하자 남자 직원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처음에 안해준다, 그것도 양수증에 싸인만 하지말고 도장이 찍힌 영수증을 받아들고 이를 깨물고 걸어서 삼만원을 빌려다가 원무과를 갔다.
검사비 미수금 오천원을 받으라고 만원짜리를 주니까 다른 아가씨가 서류검사도 하지 않고 하는 말이 할머니 만원인데 그러는것 아니냐는 것이다.
다시한번 놀랬다. 그래 이때다 싶어 영수증을 내밀자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오천원을 준다.
원무과에서 일을 하면 최소한 고등교육은 받았을 것이 아닌가. 나는 배운 지식도 없지만 배운것이란 흙에다 씨앗뿌려 하늘의 순리대로 진실 성실로만 마음을 다지며 흙,벽돌 같이 살아 왔건만 모두가 원망스럽다.그러나 때로는 너무 냉정하고 삭막한 곳이 아닌가.
중국교포 박선생이야 말로 진흙탕에서 캐낸 보석이 아닌가. 그 아름다운 마음씨를 어찌 돈으로 환산 할 수 있을까. 그 은혜를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살아갈 것이다.
35생 이나이가 되도록 없으면 안먹고 안쓰지 외상거래 남들과 약속을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해본적이 없다. 사정이 있으면 며칠전에 알려주는 것이 도리인줄 알고 살았다.
가진것은 없어도 약속은 지켜 가면서 때묻지 않게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권력과 명예 지식과 부를 가춘 사람들 목소리 높이는 분들이야 말로 자기 약속을 위반하고 배신하는 행위처럼 추하고 나쁜것은 없는 듯 하다. 물론 다 그런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직도 어두운 곳에 빛이 되어주고 사랑의 손길로 보듬어 주는 분들은 묵묵히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박봉을 쪼개 가면서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는 분들이다.
이 분들은 잡초처럼 세속에 짓밟히면서도 청백리 같이 살아온 분들이 아닌가 한다.
하루빨리 불신없는 아름다운 사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러나 아무리 싸늘한 가을 바람에 가슴을 헹구어 보지만 면전에서 불신, 그런 불신은 당해보지 않는 사람은 그 심정을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며칠을 두고 두고 가슴이 짠해 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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