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잃은 사람들

옷을 갈아입은 주황색의 감이 까치와 가을을 이야기하는 계절이다. 텔레비전 화면이지만 오랫만에 부모님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고향 모습을 보았다.
감을 깎아 썰어 널은 뜨락엔 검고 투박한 손끝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짧은 가을볕이 산을 내려오면 산골 마을은 빨리 어둠속에 잠긴다.
물따라 길따라 창작 교실 회원들과 함께 청풍문화재단지로 문학기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평소에도 무척 가보고 싶었던 그 곳은 청풍명월의 고장답게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모두의 얼굴은 설레임으로 가득차 밝은 웃음을 짓고 있는데 입구의 청풍 팔영루엔 담쟁이 풀이 벽면 가득 고운 빛깔로 단장하고 있었다.
잘 조성된 단지 내의 공원은 온통 가을빛 이었다. 고운 햇살 받아 빨갛게 익은 산수유 열매, 반쯤 갈아입은 나뭇잎이 가을을 재촉하고 초가지붕의 연자방아에 눈길들이 머물렀다.
멀리 바라다 보이는 충주호의 수면 위엔 미끄러지듯 유람선이 지나가고 가득찬 푸른 물은 여름 내 속태우던 응어리도 풀어줄 것 같았다.
때마침 분수쇼가 열리는 시간이었다. 반짝이는 물빛 위로 100m정도의 물 기둥이 솟아 오르고 멋진 포물선을 그리며 물속에 잠기는가 싶더니 분수는 여러 물 줄기로 사방에 퍼져 나갔다. 우리 일행은 물론이고 소풍나온 유치원 아이들도 신기한 듯 바라 보았다.
청풍문화재단지는 충주 다목적 댐의 건설로 인하여 충주시, 중원군, 제원군, 단양군에 이르는 남한강 언저리를 물에 잠기게 했는데 가장 피해가 심한 곳이 제원군이라 한다.
제원군은 모두 다섯개 면에 걸쳐 51개의 마을이 물에 잠겼으며 특히 청풍면의 마을 27개중 25개나 되는 마을이 물 밑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한다.
더욱이 청풍면은 오랜 전통이 있어서 역사와 유산이 많은 곳이었다. 그래서 문화재들을 보존하기 위하여 1982년부터 4년에 걸쳐 청풍면 물태리 망월 산성 기슭에다 물 속에 잠기게 된 많은 문화재를 옮겨다 복원시켜 청풍문화재단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넓은 잔디 위에 일렬로 서 있는 석물군은 남한강변의 거석 문화의 변천을 알 수 있었다.
문화재로는 한벽루, 팔영루, 금남루, 금병헌, 응청각 등 눈길이 머물지 않는 곳이 없었는데 그 중에서도 제일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 있었다.
바로 수산 지곡리 고가, 청풍 도화리, 후산리 고가다. 그곳은 특히 청풍면의 민가에서 전해 오던 여러가지 민속 생활 도구들이 함께 하는 곳이었다.
싸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고향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부엌엔 흙 부뚜막, 검은 가마솥, 광주리, 사발등이 놓여 있고 방엔 반닫이, 물레, 화로등 많은 도구들은 안주인의 손때가 묻어있는 듯 했다.
집 바깥 벽의 굴뚝 옆이나 뒤란에도 바깥 어른이 썼음직한 소 여물통, 삼태기, 길마, 멍에, 멍석, 가마니틀, 별를 털던 와랑 기계등 어느것 하나 소중한 도구들이 아닌것이 없었다.
와락 눈물이 솟아오를 것만 같았다. 고향을 물 속에 두고 다른 곳으로 떠나야만 했던 수몰민들의 애환이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아서 였다.
자식들 키우며 오손도손 살던 집엔 부모님들의 손길이 안간 곳이 없었을텐데 정든 집 두고 어찌 발길을 돌릴 수 있었겠는가.
고향을 떠난 후 생병을 앓은 사람들도 많았다고 하니 그 분들의 그리움이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여러가지 생활도구들은 내 가슴 속에 간직한 향수가 그대로 묻어 있었다. 내 아버지의 손끝이 만들어내던 삼태기며 둥구미, 눈에 보이는 모든 정서가 아버지의 환영으로 가슴을 적셨다.
내가 살던 고향은 낮은 산 자락에 자리 잡은 작은 집이었다. 새 소리에 잠깨어 밖으로 나오면 구수한 소 여물 냄새가 코를 간지르고 부엌에선 도마 위에 칼 부대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왔다.
깨끗이 비질되어 있는 마당 끝엔 잘 생긴 황소가 코를 벌름 거리고 부지런한 아버지는 동네 샘에서 초롱 가득 담아온 물 지게를 내려 놓으셨다.
옛 모습이 그리운 고향집, 너무 보고싶은 아버지..... 별이 쏟아지는 여름밤, 멍석깔고 어머니 무릎 베고 누우면 호랑이옛날 얘기에 밤은 깊어가고 모기 물릴라 쑥불을 피워주시던 아버지,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별을 세다가 사르르 잠이 들던 어린시절이 목메이게 그리워진다.
조상 대대로 물려 오던 삶의 터전을 잃은 많은 사람들, 넘실대는 푸른 물결은 그분들의 허전한 마음을 얼마나 알까? 그래도 작은 위안을 찾을 수 있는것은 청풍문화재단지에 옮겨놓은 유적에서나마 옛 고향집을 기억하고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오는 여행길은 짧은 가을 볕이 원망스러웠다. 해바라기가 알알이 영글어 가던 가로수 길, 산그림자 내려 앉은 충주호의 가을산은 어디쯤에 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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