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정

 

현재 청소기와 나는 갈등중이다.

사람도 아닌 물건과 무슨 신경전이냐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하겠지만 며칠째 계속되는 장기전이다. 예쁜 사람은 단점도 예뻐 보이듯이 내겐 새 청소기가 그랬다. ‘먼지 따로’라는 이름을 달고 십여년 동안 정들었던 헌 청소기를 과감히 밀쳐내고 우리집에 새로이 들어왔다. 전에 청소기를 돌릴때면 그렇게 시끄럽던 소음마저 새 청소기는 좋게 해석이 되었다.


일하면서 소리로 주인에게 자신의 수고를 주장하는 당당함으로 느껴지고 씩씩한 청년처럼 비쳐졌다. 더러운 먼지를 배속에 집어넣어 둘 수 없다고 먼지통을 밖으로 달아 일한 표시를 눈으로 보여주는 것이 솔직함으로 보여졌다.


그것도 잠시, ‘먼지 따로’가 우리집에 들어오면서 고약한 버릇이 생긴 것이다. 퇴근해서 돌아오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청소기 돌리는 일이 되었다. 먼지가 보이니까 집안 전체가 먼지투성이 일 것 같아 꺼림칙해서 다른 일을 먼저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틈만 나면 병처럼 청소기를 돌리게 되었다. 이젠 내게 솔직함도 아니고 당당함도 아니었다. 곤욕이었고 쉴 새 없이 요구하는 노동이었다.


이렇게 청소기와 씨름하고 있을 때 아들은 학기말 시험 때문에 자신과 싸움을 하고 있었다. 늦게까지 공부하고 오는 것이 안쓰러워 기다렸다가 아들이 자야 나의 하루는 끝이 났다. 그렇게 열흘을 보내고 나니 아들보다 내가 더 힘들었다. 몸이 피곤하다 싶더니 입술이 부르트는 것이었다. 이런 나를 본 그이는 “그렇게 기다려 주는게 아들에겐 크나큰 부담” 이라며 핀잔을 주는게 아닌가. “왜 애를 과잉보호하며 키우냐” 며 “먼저 잘 것이지 누가 기다리랬느냐”는 식이었다.


나도 질세라 “아이의 엄마가 되어 가지고서 그 시각까지 힘들게 공부하고 돌아오는 아들을 두고 잠이 오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아들도 기다려 주지 않고 편히 자는게 미안하지도 않은가 싶었다. 평소에도 가족중 한사람이라도 돌아오지 않으면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걸 알면서 내게 화낸 것이 분해 표적의 직구를 날렸다.


“애가 오거나 말거나 곰처럼 씩씩 잠만 자는게 아빠예요?”

“그래, 당신은 훌륭한 엄마니까 잘해봐”

그후로 그이는 말문을 닫아걸고 있다. 싸움끝에도 못참아서 먼저 말을 거는 그이인데 이번에는 달랐다. 아마 곰처럼 이라는 말에 화가 많이 난 모양이었다. 말 안해도 아들 때문에 힘들다는 것을 다 알고 있을 그이다. 자기 노고를 너무 주장하고 내세워서 ‘먼지따로’와 갈등하고 있는 내가 그이에게 있어 그 청소기가 바로 나였다. 생색내기를 좋아하고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나. 보지도 않고서도 그이는 전화 목소리만으로도 나의 감정의 날씨를 금방 읽어낸다. 좋지 않은 일들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드러내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건 솔직함이었고 직선의 미라 여겼으니까 말이다. 그것이 얼마나 한심한 아집이었는지를......


‘그이가 곰이라니, 그럼 나도 별수 없이 곰의 마누라’

이쯤에서 나는 ‘먼지따로’와의 갈등을 끝내기로 했다. 다시 헌 청소기를 꺼내기로 했기 때문이다. 안으로 먼지를 삼키는 것이 헌신처럼 생각되어져 그이도 나의 가시말에 많은 상처를 속으로 삭히고 있음이 보였기 때문이다.

먼지를 다 보여주며 생색내는 ‘먼지따로’보다는 그 먼지를 다 삼켜버리는 당신 같은 헌 청소기가 더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헌 청소기로 바꿨답니다.

혹여 당신도 내가 청소기를 그랬던 것처럼 나대신 아내를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는건 아닌지요.

그러시다면 다 부질없는 일입니다. 바꾸어 보니 옛것이 더 좋더이다. 이제야 내눈이 나로 인한 당신의 힘듬을 봅니다.

 

<가섭산의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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