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수

 

많은 어린이들 가운데 정을 그리워하는 아이가 있었다.

싹싹하고 상냥스런 여성스러운 남자아이 저런아들 하나 갖고싶은 심정으로 그 아이에게 사랑과 관심을 쏟은 적이 있었다.

그 아이와 오고가며 눈맞춤, 그러다 자기의 속마음까지 비칠때가 있어 그때를 놓칠세라 이야기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맏아들로 태어났고 동생들에게 치여 집에서 공부할때에 방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란다.

부모님의 심부름을 도맡아 하며 그런 저런 이유로 집에 일찍 가기 싫다고 했다.

이해가 갈만한 아이의 불만은 맏이의 고통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그를 보면서 나의 어제를 보는 것 같아서 빙그레 웃었다.


나의 어제는 막내의 고통이었다.

많은 형제들 가운데 심부름은 늘 내 몫이었다.

여러명이 한번씩만 시켜도 6번이다.

심부름 중에서 제일하기 싫은 것은 연장 빌려오는 것이었다.

자잘한 심부름을 하다보면 칭찬보다는 꾸중을 더 많이 듣게 된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씻기지 않은 기억하나가 있다.


친척집으로부터 들어온 채반엿을 온가족이 하나씩 나누어 먹고 집에 돌아오지 않은 조카몫으로 아버지는 나에게 두었다 조카를 주라고 건네주었다.

호랑이처럼 무서운 아버지영을 감히 어떻게 어길까?

조심스레 윗방고리짝에 잘 두었는데 문제가 생겼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언니와 어머니 모두가 동원되어 찾아도 엿은 증발하고 말았다.


아버지께 걱정을 크게 듣고 눈물 콧물 흘리며 내가아니다 라고 호소했으나 더 큰 걱정만을 초래하였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사랑채로 건너가시고 나의 정직을 남은 가족에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심정으로 ‘나는 정말 아니야. 누가 그랬어! 모두가 내 얼굴만 바라본다.

그때 작은 오빠가 “얘 미안하다 내가 먹었다. 아버지가 크게 격노하시어 내가 나설수가 있어야지. 내 대신 아버지의 걱정을 들어주어서 고맙다고”한다.

7살 위인 오빠가 미웠다.


그날의 심부름은 불명예로 아버지의 눈에 비치고 말았다.

살아가면서 내진심과 상반된 삶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가.

크고 작은 자잘한일들 밝히려고 하면 시끄럽고 아무렇지도 않은 일로 지나기엔 찜찜한 일들이 종종 있지만 어쩌랴.

하늘이 알고 땅이아는 일들을. 푹묵히고나면 모두가 희석되는 것을.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맏도, 막내도 아닌 사회의 틀속에서 서서히 밀려나는 삼각주의 모래톱이 되어 갈무리된 수분을 조금씩 뿜어내고 있다.

얕은 주머니 속의 동전처럼 떨어질 때마다 주워담는 아이들의 꿈이 언제쯤이면 견고한 성으로 우뚝설까?

돌부리에 채인 발톱의 통증을 모르는 아이들 그들은 그 나름대로 고통이 있나보다.

 

<가섭산의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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