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신익희 선생은 결코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가 영적인 힘을 동원해 내게 들려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사실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신익희 선생은,

“나는 홍차를 즐겼다. 그래서 호남선 열차를 타고 자리를 잡았을 때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홍차를 한잔 먹었을 뿐이다. 그러나 마시고 난 후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한마디 말도 못하고 죽어 버렸던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해공 신익희 선생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해공 신익희 선생을 사망케 한 세력이 이승만과 그 측근들이라는 이야기부터 당시 민주당 내부에 있는 배신 세력이 저지른 독살이라는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구명시식을 통해 만난 신익희 선생은 결코 자신의 죽음이 심장마비가 아닌 ‘알 수 없는 약 등에 의한 독살’이라고 강경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해공 신익희 선생의 영혼과 만나 이야기하면서 느낀 것은, 당시 신익희 선생의 암살을 기도한 세력들은 1956년 5월 5일, 당시에 있었던 선거에서 해공 신익희 선생이 이승만을 누르고 대통령이 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소위세상이 바뀌고 권력이 이양되는 순간 자신들에게 닥칠 국민의 심판을 두려워했을 뿐 아니라, 해공 신익희라는 하나의 인물을 제거함으로써 구체제에 걸쳐 살고 있는 많은 관리, 정치인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비 내리는 호남선>의 비원을 만들게 된 것은 모두 이러한 자신의 기득권과 권력의 물맛을 유지하려는 세력들에 의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구명시식을 통해 만난 해공 신익희 선생, 곧 그 분의 영가는 나에게 이러한 세력들의 음모와 죽음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원망하거나 저주를 내리는 언동은 하지 않았다.

다만 당시 열화와 같이 솟아오르던 국민들의 민주화 열기와 이승만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자신에 대한 지지를 하나의 결과로 보여주지 못했던 아쉬움(어쩌면 책임감 같이 느껴졌다.)과 그리고 자신의 죽음이 보다 정확히 세상에 알려져서 다시는 이와 같은 사건이 발생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호소하고 있었다.

또 한 가지는 해공 신익희 선생은 구명시식 당시 나 자신도 처음에는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나의 죽음이 결코 심장마비가 아닌 독살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인물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인물은 바로 ‘생존하고 있는 제헌 국회의원 ㅈ 씨’라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처음에 나는 이것이 혹시 가상의 인물이 아닐까 생각하였다. 그러나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수소문을 해본 결과 의문이 가는 점이 있었다. 그리고 그가 바로 당시 해공 신익희 선생의 죽음을 둘러싸고 역사의 현장을 지켜본 인물 중에서 가장 진실을 알 수 있는 현장에 근접하고 있었던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는 지금도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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