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명화

출근길이 나에게는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매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자연과 만남의 기회이기도 하다.

오늘 아침은 차가 지체되어 무심히 옆을 보았다. 작은 키에 빨간 코스모스가 앙증맞게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아직도 초복이 며칠이나 남았는데 뭐가 그리 급했을까. 아니면 그리 덥지 않은 날씨 때문에 가을로 착각 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 집에도 착각을 해서 나를 애태운 나무가 있다. 몇 년 전에 남편 사무실 개업 때 선물로 들어온 벤자민 고무나무이다. 관리소홀로 잎은 다 떨어지고 잔가지는 말라 비틀어져서 손으로 꺾어도 똑똑 끊어졌다. 남편은 자리만 차지한다고 내다 버린다는 것을 내가 살려 보겠다고 집으로 가지고 왔다.

겨울이라서 실내에 들여놓고 물을 때맞춰 주었다. 줄기에는 스프레이로 매일 물을 뿌려 주었다. 한 달 정도 지나자 신기하게도 나무는 푸른빛을 띠우고 살아있음을 보여줬다. 가지에는 바늘처럼 연녹색 잎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나의 생명을 탄생시켰다는 자만심마저 들었다.

그때부터 있는 듯 없는 듯, 한 식구가 되었다. 어느 해는 덮게 없는 차에 실고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삿짐센터 직원이 던지듯 베란다에 가져다 놓은 그 화분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가지는 꺾이고, 잎사귀는 바람에 다 떨어나갔다.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잊어버리고 이사할 때 그 자리에 놔둔 채 습관적으로 물만 열흘에 한번정도 주었다.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지만 어느 틈에 파랗게 잎을 피워 냈다.

해주는 거라고는 겨울이면 실내에 들여 놓고 봄이 되면 베란다에 내놓는 것이 고작이다. 물주는 것도 언제부터 인지 어머님 일이 되어 버렸다.

올 겨울에도 실내에 들여놓고 관심도 없이 지냈다. 무성하던 잎이 거의 다 떨어질 즈음에서야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강인한 나무라 해도 제대로 생장 할 수 없는 조건을 다 주고 있었다. 햇빛 한줄기 안 드는 방에다 놓고 물은 화분 받침에도 차고 넘쳤다. 그때서야 화분에 수북하던 낙엽을 긁어내고, 화분받침대에서 물을 버리고 닦아서 다시 받쳐 주었다. 그리고 햇빛 대신에 밤에는 형광등을 켜두었다. 그렇게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잎을 틔워냈다. 나뭇잎 색깔과 보드라움이 봄의 새싹 그것이었다. 그런데 밖의 날씨는 봄이 올 기미조차 없는데 성급한 나무가 착각을 했나보다.

어느새 대지는 봄맞이로 부산스럽다. 낮에는 제법 따뜻해서 창문을 열어 놓고도 지낼 만 했다. 우리도 집안 대청소 하느라 그 나무를 밖에 내놓았다. 화분을 내다 놓은 지 며칠째 되던 날 이었다. 연녹색으로 예쁘던 나뭇잎이 잎가장자리서부터 하얗게 되더니 전체가 변해서 재처럼 바스러졌다. 잎 떨어진 잔가지가 보기 싫어서 나무 밑 둥 만 남겨놓고 잘라버렸다.

밖에는 개나리도 피고, 벚꽃도 흐드러지게 피어나는데 우리 집 화분에는 소식이 없다. 식구들이 죽은 나무를 입구에 놔두면 보기 좋지 않다고 치우라고 성화다. 몇 해를 같이 살면서 착각을 좀 심하게 해서 그렇지 실망 시킨 적이 없었다. 나는 포기 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발 깨어나라고 주문을 한다. 물도 열심히 주고 영양제도 부어주었다.

다른 봄꽃은 다지고 아카시아 꽃이 필 때였다. 아침에 그 나무를 보다가 손으로 두 눈을 비볐다. 몸통 밖에 남지 않은 곳에서 좁쌀 만 한 노란 싹이 껍질을 뚫고 올라오고 있었다. 늦은 시작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하루가 다르게 잎들이 무성하다. 전처럼 연녹색의 연약한 잎이 아니라 건강하고 푸른 잎사귀다. 아직은 벤자민 고무나무 고유의 모양을 못 갖추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이 나무처럼 나의 글쓰기도 늦은 시작이지만 열심히 읽고 쓰다보면 수필이라는 나무의 형태를 흉내는 내 볼 수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더러는 선생님의 칭찬이 전부인양 착각도 하면서 말이다.

<가섭산의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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