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옥

 

며칠 전 일본을 다녀왔다. 첫날 공장방문, 선별기에 대한 점검을 끝내고 저녁식사에 곁들여 나마비루(맥주)와 사케(정종)를 마시게 되었다. 해엄은 삶터를 벗어나면 여행지의 현지 음식을 즐겨 먹는 편이다. 늘 곁에 있던 소주나 고추장은 여행 가방에서 내보낸 지가 오래다. 일행을 안내한 이는 오다니 부장으로 영업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안녕하세요.’ 이외의 의사소통이 안 되어 재일 한국인인 같은 회사의 K양이 곁에서 같이 마시면서 흥을 돋워준다.

여러 번 방문으로 그들과 술자리를 자주 한 덕에 터득한 것이 몇 가지 있다. 술잔을 덜 비우면 반드시 채워주고, 잔을 돌리는 것을 싫어한다. 언젠가 안내자가 일본의 술 풍습은 영주문화의 잔재물이라고 한 말이 기억난다. 우리나라에도 여러 번 침략했지만 제 나라 안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싸웠던 민족이고, 술자리에서도 칼을 차고 마실 만큼 누구도 믿지 않는 종족이라서 술잔을 주고받지 않는다고 했다.

일본과 한국의 술 마시는 습관에 대하여 이야기가 자연스레 오갔다. “어찌하여 왜국에서는 술을 마시다 놓으면 잔을 채워주는지?” 이렇게 물어도 물론 통역은 “일본에서는”으로 했을 것이다. 아니 그리했을 것으로 믿는다. 약간의 취흥이 돌면서 한국에서는 색다른 주법이 있는가를 물었다.

때는 이때다. 마신 술이 주주 골 방죽만큼은 되고 빈병이 트럭으로 몇 대는 될 것이라는 평소의 허풍에 걸맞게 우리나라에는 주법 오 훈(酒法五訓)을 설명했다. 첫째, 막걸리면 어떻고 소주면 어떠냐? 닥치는 대로 마셔야 하는 청탁불문(淸濁不問), 둘째, 봉이 김 선달이 언제 돈 주고 술 마셨느냐? 없으면 외상으로 사면되지, 돈이 있는 없든 마시고 보는 현외불문(現外不問), 셋째, 장모 집이면 어떻고 외가면 어떠냐? 술만 있으면 되지 자리를 가릴 필요가 없다는 장소불문(場所不問)이다. 넷째, 술만 마시면 되지 점잖은 왜 빼고 체면은 뭐 하러 차려? 선술집이면 어떻고 방석집이면 어떠냐는 입좌불문(立坐不問), 마지막으로 술자리에서 나이 알아서 뭐하냐? 어른이던 아이던 즐겁게 마시면 그만이지 노소불문(老少不問)이다. 이런 것 다 가리다가는 술 맛 떨어져 기분 잡친다.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기분 좋게 시작하고 얼큰하게 끝내는 것이 한국의 주법이라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섞어 마시면 취기가 오래갈 것이고, 돈 없이 어찌 남의 물건을 탐하며, 미치지 않고서 아무 곳에서나 술자리를 할 수가 있는가? 목적도 없이 대충 마시려면 뭣 하러 돈 쓰냐? 일본에서는 담배는 노소동락 해도 술은 같이 못 마신다.’라는 거다.

이 사람 술잔을 보냈는데 영 돌려주지 않더니 연거푸 두 잔을 넘겨준다. 또 한마디 술 품앗이는 고드랫돌 품앗이라고 했더니 고드랫돌이 뭐냐고 묻는다.

“나무막대에 일정한 간격으로 줄눈을 새긴 틀을 자리틀이라 한다. 청올치로 만든 노끈에 돌을 양끝에 매달아 왕골이나 골 풀을 올려놓고 자리를 엮는데 그 돌이 고드랫돌이다.”라는 통역을 하느라 K양 진땀깨나 뺐을 것이다.

일본의 다다미는 그렇게 만들지 않는단다. 자리틀에 씨 실을 촘촘히 걸고 엮은 줄이 보이지 않게 짠다고 했다. 그런 것이 일본과 한국이 다른 것이다. 노끈이 보이지 않게 만드는 다다미처럼 마음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것이 일본이고, 고드랫돌을 써서 엮은 줄이 겉으로 들어나 보이는 자리처럼 열린 마음을 가진 것이 한국이라고 했더니 기분이 좋지 않은가 보다. 술과 고드랫돌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따지듯 묻는다.

“예끼 여보슈! 고드랫돌 넘겨주고, 반대쪽 돌 당겨오지 않으면 자리가 흐트러지고 중심이 쏠려 자리틀이 넘어지지. 술잔도 넘겼으면 반드시 돌려줘야 술자리가 깨지지 않고 취흥이 도도해지는 거유.” 그제야 조금은 이해가 되는 가 보다. 술잔 한잔 쭉 비우더니 잔을 넘긴다. 맥주에 정종을 섞어 잔을 채워주고는 어설픈 소리로 “고드래도르” 한다. 허허…. 기분 좋다. 이런 것이 문화교류 아니겠는가.

<가섭산의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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