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옥

붕어가 우리집 목욕탕에 온 지도 서너 달이 되었다. 처음에는 찜을 할 요량으로 뱃속에 있는 이물질을 토해 놓으라고 목욕탕에 넣었던 것이다. 그런데 생동감 넘치는 붕어를 차마 잡을 수 없어서 차일피일 하다가 이제는 정이 들어서 잡지 못하고 있다.

개울에서 사는 물고기가 수돗물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시간이 점점 갈수록 올 때보다 더 생기가 났다.

그런데 어느 날, 거실에서 조용히 혼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목욕탕에서 무엇인가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라 목욕탕 문을 열어 보았다. 하지만 목욕탕은 깨끗했다. 분명 소리는 났는데 이상한 일이다. 이후로도 목욕탕에서는 하루에도 두어 번씩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다름 아닌 붕어가 내는 소리라는 것을 며칠 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목욕탕 욕조에 있던 반신욕 덮개를 붕어들이 튀어 올라 부딪치는 소리였다.

석 달 전, 남편은 친구가 주었다며 까만 봉지를 내게 불쑥 내밀었다. 바가지에 쏟으니 크고 작은 물고기가 가득했다. 이미 죽은 것도 있고 몇 마리는 숨을 팔딱 거렸다. 그 중에 손바닥 만 한 붕어 두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붕어 두 마리를 욕조에 넣어 주기로 했다. 욕조의 물은 붕어가 토해 놓은 이물질로 금새 탁해지곤 했다.

자주 갈아준 덕분에 욕조의 물은 한결 깨끗해졌다. 붕어도 몸 색깔이 강에서 올 때보다 연한 빛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남편은 밤톨만한 밥덩이를 장국물에 섞어 붕어 먹이라고 주었다. 붕어를 지켜보던 남편이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외롭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듣던 아들 녀석은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져 목소리를 높인다.

“엄마, 이리와 보세요. 붕어 꼬리가 휘어졌어요.”

가까이서보니 붕어 꼬리가 정말 기역자로 삐뚤어져 있었다. 햇빛을 보지 못해서 일까. 아니면 올 때부터 그랬던 것일까. 어쩌면 우리 집에서 변형이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구부러진 물고기를 보고 있으려니 러시아에서 본 풍경이 생각이 났다.

이 년 전, 러시아로 문학기행을 갔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갔을 때다. 차창밖에는 잔디밭과 껍질이 하얀 자작나무가 보인다. 청바지에 배꼽티를 입은 아름다운 러시아 여성들에게서 생동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초록색의 잔디밭에는 사람들이 나란히 누워있는 것 같기도 하고, 쓰러져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일행들의 시선이 모두 그 쪽으로 모아졌다. 다가가보니 여자, 남자, 어린이까지 잔디에 누워있었다. 웃옷을 벗은 사람도 있었고 수영복 차림의 사람도 있다. 신기해하는 우리에게 가이드는 일광욕을 하기 위해서 누워 있다고 했다.

러시아는 태양을 볼 수 있는 기간이 짧다고 한다.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기 때문이란다. 러시아 사람들은 구루병이 많다고 한다. 볕을 충분히 쪼이지 못해 비타민D가 부족하게 되고, 뼈를 튼튼하게 하는 무기질인 인산칼슘이 뼈에 침착되지 않아서 뼈가 매우 약해지거나 심하면 휘기까지 하는 것이다. 볕이 어디 사람에게만 필요할까. 동물, 식물에게도 꼭 필요한 에너지임이 분명하다.

베란다 양지쪽에 함지박을 놓고 반쯤 물을 채웠다. 김장 때 잘라서 쓴 미나리 뿌리도 넣고 붕어를 넣어 주었다. 붕어는 함지박에 들어가자마자 미나리 뿌리를 흔들어서 흙탕물로 만들어 놓았다. 수초를 헤집으며 마음껏 헤엄치던 시내가 그리운 것일 게다.

아무래도 붕어를 고향인 강으로 돌려보내야 할 것 같다.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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