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순

귀동냥을 너무 많이 한 게 탈이었다.

“여보, 저기 앞에 걸어가는 사람들 부부일까 애인사이일까?”

남편은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듯, 대답대신 의아한 표정만 지었다.

“잘 봐, 둘은 부부일거야. 떨어져 가잖아. 그럼 건너편에서 손을 꼭 잡고 내려가는 사람들 도 한번 봐봐. 저 사람들은 애인일거야. 서로 바라보는 눈길, 표정부터가 다르잖아.”

마치 애인 분석가가 다 된 사람처럼 나는 남편에게 이러쿵저러쿵 설명을 한다.

한참을 듣던 남편은 내 손을 꽉 잡더니,

“그럼 우리는 부부야 애인이야?”

“에이, 우리는 당연히 부부지. 생각해 봐. 당신 나한테 살가운 눈길 한번 줘 봤어? 저 사 람들은 연신 서로를 바라보면서 속삭이고 있잖아.”

“우리도 남들이 보면 손잡고 속삭이는 것처럼 보일걸.”

한 남자를 만나 부부의 연을 맺고 이십년의 세월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우리는 둘만의 휴가를 위해 처음으로 2박 3일간의 제주도 여행을 왔다. 물론 그동안 이곳저곳으로 하루 코스나 아니면 짧은 1박을 했던 여행은 종종 있었다.

이십년 전 우리의 신혼여행지는 제주도였다. 그리고 그때 약속을 했다. 10년 후에 다시 둘이서 여행을 오자고. 하지만 바쁜 생활에서 짬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십년을 지각해 제주도를 찾았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나는 남편에게 한라산을 꼭 오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첫날 묵었던 민박집 주인의 말이 한라산 등반을 하게 되면 하루 일정은 그것으로 족해야 한단다. 잠시 남편은 내 표정을 살피더니 이내 한라산 행을 결정 해 주었다.

등반하기에 무난하다는 영실에서 윗세오름의 코스를 선택했다. 주차장을 한참 못 미쳤는데도 등반을 하려는 사람을 태운 차들이 꼼짝을 못하고 있었다.

차를 갓길에 세우고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길은 빙판이었다.

남편은 내가 넘어 질까봐서인지 산 초입부터 잡았던 손을 웬일인지 놓지 않고 있다.

그렇게 1시간여를 아스팔트길을 걸어 올라가니 영실 휴게소가 나왔다. 아직 멀었냐는 내 무름에 맘씨 좋게 생긴 휴게소 주인 여인네는 이제부터가 진짜 등반의 시작이이라고 일러 주었다.

좁은 산길은 눈으로 인해 더욱 좁기만 했다. 발걸음이 빠른 남편은 자꾸만 쳐지는 나에게 어디서 구해 왔는지 막대기 하나를 내민다.

꽉 잡고 따라 오란다. 산을 내려오는 사람들 중에는 우리 모습을 보고 빙그레 웃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성격이 정반대이다. 꼼꼼하지만 성격이 급한 남편에 비해 나는 덜렁거리면서도 느근한 편이다. 산을 오르는 일도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자꾸만 뒤쳐지는 나를 남편은 그냥 놔 둘리가 없었다.

거의 끌려가다시피 올라가는 중간 중간 잠깐만 쉬자고 해도 남편은 막무가내였다. 그러다 내가 막대기를 놓아 버리면 그제서야 잠깐 쉬고는 또 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니 풍경이고 뭐고 구경할 틈도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남편은 그런 사람이었다. 쉬는 것을 용납 못하는 성격, 그저 묵묵히 앞만 보고 걸어 갈 줄만 아는 사람이다. 그것이 얼마나 자신을 힘들게 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멈추지를 못한다.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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