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영

그때 시골에는 특별하게 즐겨 먹을 수 있는 간식이 별로 없었다.

후미진 밭가에 심었던 토마토나 참외 몇 포기가 전부였다.

저녁밥을 먹고 난 후에 삶은 옥수수와 찐 감자를 맛있게 먹었던 생각도 난다.

참외랑 수박 농사를 지었던 어느 해 여름에는 동네 아이들이 만만하게 참외서리를 하는 장소가 되기도 했었다.

창골을 돌아서 나오면 숫거리 라는 우리 동네 초입이 나온다.

다른 동네에도 마을 입구에 숫거리가 있다.

그런걸 보면 숫이라는 첫 글자에는 옛 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정서가 음보다 양을, 여자보다 남자를 우선시 해왔던, 그런 수컷을 상징하는 뜻이 들어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한나절을 돌아다니는 동안 내 허리춤엔 총알을 맞은 새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하루아침에 유명을 달리하여 내 포획물이 되었던 것이다.

참새를 비롯하여 박새, 콩새, 비둘기, 산까치 등등. 산까치는 날개 안쪽 부분으로 아름다운 빛깔의 깃털이 있다.

몸집이 비슷한 비들기와 같이 얼마나 영리한지 사격 자세를 취하고 총을 겨누면 꼭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에 날아가 버린다.

멀리도 아닌 내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을 만큼의 거리까지 날아가서 앉는다.

어설픈 포수의 자세로 나뭇가지 들을 헤치며 살며시 다가갔다.

사정거리 까지 겨우 다가가서 총을 겨누면 또 날아가고를 수도 없이 하기 때문에 몇 시간 동안 산까치 뒤만 따라 다니다가 결국은 포기하는 때가 대부분 이었다.

해가 중천을 넘길 때가 되면 난 어떤 전투에 참가 했다가 승리하고 돌아오는 개선 장군 이라도 된 것 같은 몸짓으로 이웃 동네와의 경계선이 있는 솔이테 고개 쪽으로 올라갔다.

좌측에는 둑이 높은 연못이 하나 있다.

주변에는 아람들이 플라타나스 몇 그루가 곧게 서있고 몇 십년 쯤 묵었을 늙은 버드나무 들은 물 위로 길게 가지를 늘어뜨려 운치 있어 보였다.

그 연못은 사철 정겨운 시골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다.

겨울철엔 썰매를 타기도 하고 여름엔 낚시를 던져 붕어도 잡았다.

나뭇짐을 지고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플라타나스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며 땀을 식히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곳 에서 휴식을 취하며 마른 나뭇가지들을 주워 불을 피우고 그 속 불에다 새들을 구워 먹었다.

그 때에는 몰랐다. 알 수도 없었다.

내가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면서 언제부터 였는지, ‘난 어렸을 적에, 그 어렸을 적에 무수히 많은 새들을 살생 했었다’라는 사실이 서서히 인식되어 오기 시작했다.

지금도 마음 속 어느 한 켠을 그 일들이 적지 않은 중압감으로 억누르고 있다.

일상생활 중에도 자유롭지 못한 피해의식 같은걸 느끼고 있다.

난 토속신앙을 믿지 않는다. 미신 따위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생활의 리듬이 엉킬 땐 나도 모르게 독백으로 “난 살생을 너무 많이 했어” 라고 중얼거리는 습관도 생겼다.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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