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연

모처럼 아침 일찍 가게 청소를 마치고 책상에 앉았다.

며칠전 청주형님이 들려서 챙겨 주고 가신 「좋은 생각」 책을 읽어 내려 갔다.

읽기 편한 짧은 사연이 많고 다른 사람의 생활을 엿볼 수 있어서 즐겨 보는 책이다.

바빠서 밀쳐 두었다가 오늘에야 펼쳐 보았다.

그 날따라 한 편의 글이 가슴에 오래도록 남았다.

내용에 걸맞는 제목을 선택한 필자의 탁월함이 돋보인 글이였다.

사연은 오랫동안 애착을 갖고 사용하던 컵에 손잡이가 떨어지면서 버리게 된다.

쓰레기처리 된 줄 알고 잊고 지냈던 그 컵이 두달 정도 지난 후 아파트 공동구역내 흡연실에서 재떨이로 사용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 컵을 보고 필자는 ‘제 2의 인생’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못 쓰는 컵의 새로움을 발견한 사람으로 인해 그 컵이 제 2의 인생을 살아간다고 생각한 것이다.

얼마 전 청주 여동생네 집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거실 구석에서 내가 직접 쓴 시가 적힌 도자기를 보게 되었다.

오래 전 문인협회에서 공방을 방문해서 글을 쓰고 구워 온 것이다.

그 도자기는 친정집에서 천대를 받았었다. 조카들이 과자봉지나 휴지조각을 집어 넣으면서 쓰레기통이나 다름없었다.

아마도 동생이 친정집에서 대청소를 하다가 그 꼴을 보고 집으로 가져 왔나 보다.

하지만 아무말도 없이 남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 온 것을 보고 처음에는 괘씸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다.

도자기를 앞에 두고 감정이 뒤섞이는 가운데 생각해 보니 소중한 것을 소중히 다룰 줄 몰랐던 내 잘못이 더 컸다.

귀한 것을 볼 줄 아는 동생으로 인해 내 시가 적힌 도자기는 윤이 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같은 사물을 똑같이 바라보더라도 다른 생각을 한다.

사물을 바라보고 다루는 눈에는 그 사람의 경험과 가치관도 함께 작용한다.

나는 어느 곳을 가더라도 직업과 연관된 종이공예작품을 금방 알아채고 예사로 넘기지 않는다.

또한 길을 가다가도 버려진 상자나 폐품을 활용할 궁리를 먼저 하고 주워 오기 일쑤다.

그러나 집안을 꾸미고 가꾸는 것에는 소홀하다.

가끔은 곁에 두고도 소중한 것을 보고 지킬 줄 모르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여동생네 집에 있는 도자기가 그렇다.

그것은 우리 가족을 생각하며 내가 쓴 시가 적혀 있기에 사실은 내가 끝까지 아끼고 보관했어야 했다.

깨진 컵이 또 다른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해 준 사람처럼 이제부터라도 지혜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편견부터 버려야겠다.

잘못된 편견으로 시작된 만남은 오류를 범하기 쉽고, 세상을 옳게 보지 못하여 결국에는 스스로가 상처받기 쉽다.

나 또한 그로 인한 상처로 가슴에 큰 흉터하나 생겼다.

그러나 또한 나를 지혜의 눈으로 바라보고 손잡고 위로해주는 또 다른 사람으로 인해 살아갈 힘을 잃지 않는다.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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