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영

차에서 지갑을 꺼내들고 다시 올라가고 있는데 어느새 그 불편한 걸음걸이로 밑에까지 내려오고 계셨다.

나는 순간 버럭 소리를 질러 버렸다.

”내가 가져다 드리면 될 텐데 이 추운 날씨에 옷도 안 입고 뭣하러 여기까지 내려 왔어요!” “빨리 올라가세요!”하고 신경질 적으로 쏘아 붙이며 엄마 손에 돈을 던지듯이 쥐어 드리고 돌아왔다.

나도 모르게 내 뱉어 버린 차가운 독설 이었다.

그리고 이틀 후에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망연자실 했다. 내 가슴은 저 밑바닥으로 텅 하고 내려앉았다.

온 몸에선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한꺼번에 확 빠져 나갔다.

엄마가 이 세상에 살아계신 동안 그게 나와의 마지막 대화가 되어 버렸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그 허탈함에 난 넋이 멀었다.

늘 안쓰러워 가슴 아파했던 자식에게서 싸늘한 그 말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가슴에 안은 채 엄마는 홀연히 이승을 떠나신 것이다.

그게 내가 고향으로 돌아 온지 3개월도 채 안됐을 때 였다.

자식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을 때가 많아서 엄마와의 사이에 조그만 언쟁은 가끔씩 있어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문제는 우리 다섯 남매에게 있었다.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면서, 만나면 반가워서 말이나 행동을 서두르는 엄마에게 몸이 불편 하다는 이유로 행동반경을 제어하기에 바빴고 그런 것들을 문제 삼기에 급급했다.

기진하면서 까지도 털어내고 싶어 하는 얘기들을 자식들은 인내하며 진지하게 들어주지를 못했다.

고독하고 외로운 엄마의 생활에선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는 걸 알지를 못했던 것이다.

그건 병마에 시달리고는 있지만 정신만은 꼿꼿하고 초롱한 엄마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구속 이었다. 엄마는 늘 그렇게 무력했다.

그때 가볍게 포옹이라도 하며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뭐하러 여기까지 내려 오셨어요?” “얼른 올라가세요”하고 볼에 뽀뽀라도 해 드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그 아쉬움들이 잊혀 질 수 있을까?···.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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