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숙

그윽한 시선으로 한 남자가 여인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우며 “내 영혼의 끈이 당신과 연결 된 건만 같다”고 털어놓는다.

소설속의 한 장면이긴하나 현실에서 이성에게 절절한 고백을 듣는다는 것은 기쁜 일이며 황홀한 순간이다.

사실 사랑은 영원하지도 완전하지도 않는 불완전한 스토리이다.

가끔은 목숨을 다 바쳐 사랑을 했다는 전설 같은 얘기를 들으면서 온갖 상상을 해보았다.

역사 속 구약성서에 나오는 삼손과 데릴라가 그렇고 진나라를 통일한 진시황제와 양귀비가 있고 그리고 영국의 에드워드 8세는 평민이며 이혼녀인 심프슨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났다는 것이다. 그 사랑을 믿고 선택한 셈이다.

나는 중학시절부터 책이란 책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었다.

당시 시간을 소일 할 오락거리가 없는 시절이었고 핑크빛 영화를 보기위해 장거리 시내 나들이를 하기엔 힘든 시기였다.

난생처음 세계 문학 전집 시리즈를 접했고 첫 번째 읽은 책이 ‘제인 에어’였다.

나는 저녁녘에 읽기 시작한 책을 밤새도록 붙들고 있었다.

급기야는 사랑하는 사람이 실명을 하고 다시 제인과 재회했을 때 엉엉 소리 내어 흐느끼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껏 그 어떤 감동적인 소설이나 영화를 보아도 그 때만큼 나를 울린 적은 없었다.

순수했던 10대였기 때문일까. 그동안 세상 시류에 밀려나 감성은 사라지고 탁탁한 가슴만 남았다.

그러나 엄마의 사랑타령이 떠오를 때면 애정의 깊이와 넓이를 가름해 볼 때가 있다 “사랑 받는 여자”가 되라던 엄마의 입버릇 같은 말들, 내가 꼭 풀어가야 할 과제물 같았다.

흔한 말로 아내의 자리와 애인의 자리는 다르다는 것. 사랑 받기 위해선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또한 그 어떤 자리에서도 맹목적인 감정보다는 이성적이 되라는 것, 엄마에게 사랑이란 목숨을 걸만한 값어치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한바탕 부부 싸움 끝에 바람 따라 나를 찾아왔던 친구가 있었다.

밤늦도록 소태 같은 쓴 음식을 토해내듯 살아온 세월을 풀어놓았다.

퉁퉁 부은 눈두덩 이와 충얼 된 눈망울이 젖어가다가 이내 말라버린 그녀의 쓸쓸한 얼굴. 여자는 남편의 사랑이 전부고, 마지막이었다.

남편 또한 그 아내가 전부는 아니었을까. 지금껏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지금의 젊은이들은 사랑을 가슴으로 느끼지 않고 머리로 하는 것만 같다.

사랑은 색깔도 냄새도 형체도 없지만 사람 사이를 오고가는 감정의 기류인데 그것을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이 많다.

굶주려야 하는 사랑보다는 상대방의 지위와 근사한 차가 더 값어치 있는 삶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들의 삶, 그 속에 공생하고 살아남은 것은 아직도 사랑이라 말하고 싶다.

탁탁해진 가슴을 추수이며 돌아오는 가을엔 책이나 실컷 읽어볼 생각이다. 다시금 그 사랑 때문에 펑펑 울 일을 기다리며......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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