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JC 창립 30주년 기념사업

음성군은 충청북도의 중앙북부에 위치하고 음성읍·금왕읍·소이면·원남면·맹동면·대소면·삼성면·생극면·감곡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음성군의 동쪽 끝은 소이면 문등리로 동경 127。47′42″ 서쪽 끝은 대소면 내산리로 동경 127。26′50″ 남쪽 끝은 원남면 문암리로 북위 30。49′49″ 북쪽 끝은 감곡면 단평리로 북위 30。09′10″이다.
군의 면적은 521㎢이며 114개 법정리에 551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9만 군민이 살아가는 살기좋은 고장이다.
음성군의 지형은 차령산맥이 남서쪽으로 달리면서 군의 북쪽에 오갑산을 만들고 오갑산에서 남서쪽으로 원통산·수리산·수레의산·부용산으로 이어져 비교적 높은 산지를 형성하고 있다.
부용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지맥은 감우재를 지나 보현산에 이어지고 돌고개를 지나 큰산으로 이어지고 다시 남서로 뻗어 종지봉, 백마산이 되고 보광산에 이른다.
그리고 부용산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지맥은 수정산이 된다. 음성군의 수제는 오대산, 보현산, 소속리산, 마이산을 잇는 선을 경계로 동남쪽은 한강수제에 속하고 서남쪽은 금강수계에 속한다.
음성군은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아왔으며 삼국시대 초기에는 백제의 영역에 속했으며 5세기말 장수왕이 남진정책을 펼때 고구려의 영역이 되어 잉홀현(仍忽懸)이라 하였고 6세기 중엽 신라 진흥왕이 한강유역을 확보할 때 신라의 영역에 편입되고 통일신라시대에 한주에 속한 흑양군의 영현이었으며 경덕왕 16년 (757) 12월에 오늘의 이름인 음성현(陰城縣) 으로 고쳤다.
고려시대에 양광도에 소속된 충주목에 속한 현이었으며, 조선 태종 4년(1396)에 충청도 충주목에 소속된 현이었고 임진왜란후 청안현에 속하게 되었으며 광해군 10년(1618)에 음성현으로 복구되었는데 오늘날의 음성읍과 원남면 뿐이었다.
음성현은 잉홀·설성·잉근내 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조선 영조때 음성현은 동도면·남면·근서면·원서면의 4개면으로 늘어나게 되고 고종 32년(1895)에 지방관제의 개정으로 음성현이 음성군(陰城郡)으로 되며, 1906년 충주군에 속했던 사다산면·감미곡면·생동면·금목면·천기음면·소탄면·지내면·거곡면·대조곡면·법왕면·두의곡면·맹동면, 음죽군에 속했던 무극면등 13개면이 음성군에 편입되어 급격히 증가하게 되고 1913년 충주군의 소파면과 사이포면이 편입되었다.
그리고 1914년 면·리제의 통폐합에 의해 17개면이 9개면으로 되었다. 동도면과 근서면이 합하여 군내면, 금목면과 법왕면이 합하여 금왕면, 소파면과 사이포면이 합하여 소이면, 원서면과 남면이 합하여 원남면, 맹동면은 그대로 맹동면, 대조곡면 소탄면 사다산면이 합하여 대소면, 천기음면 지내면 두의곡면이 합하여 삼성면, 생동면과 무극면이 합하여 생극면, 감미곡면과 거곡면이 합하여 감곡면이 된 것이다.
1956년 음성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73년 중원군 신니면 광월리 일부가 음성읍으로 ,괴산군 불정면 문등리가 소이면으로, 생극면 도신리 일부가 금왕읍으로 편입되고 1973년 금왕면이 금왕읍으로 승격됨에 따라 음성음·금왕읍·소이면·원남면·맹동면·대소면·삼성면·생극면·감곡면으로 이루어지는 2읍 7면의 행정구역을 갖게 되었다.
음성군은 아름다운 자연과 깨끗한 환경이 어우러지며 역사와 문화·예술이 살아 숨쉬며 사통팔달의 교통과 활기찬 지역경제, 농특산물이 풍요로움을 주며 군민이 함께 만들어 가는 아름다운 세상과 행복이 있는 축복 받은 곳으로 희망과 미래가 있는 약속의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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