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옥

아침 일찍 서둘러 점심까지 준비했다.

들깨를 다 털려면 아무래도 오늘 하루는 밭에서 보내야 할 것 같아서다.

양쪽으로 펼쳐진 들판에 벼가 꼭 바둑판을 연상케 한다.

길가에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가을 햇살에 눈부시다.

우리 내외와 엄마는 읍내에서 조금 벗어나 마을로 들어섰다.

올라가는 길에는 작은 놀이터만 덩그라니 있을 뿐 아이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밭으로는 잘 익은 콩이며 무, 배추 푸성귀가 풍성하다. 농부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널찍한 밭에 다다르자 엄마는 빈 옥수수대 밭을 둘러보시던 엄마의 눈길은 쓸쓸해 보였다.

이런 곳에서 흙을 만지면서 살고 싶다며 자리를 잡고 앉는다.

십 여 년 전 까지만 해도 엄마는 시골 마을에서 농사를 많이 지으셨다.

논농사와 밭농사를 지었는데 그 중에서도 메밀을 제일 많이 심었던 기억이 난다.

겨울이면 메밀묵도 만들어서 자식들의 간식으로 주기도 하고 이웃사람들에게 팔곤 했었다.

그해 따뜻한 봄날 저녁 무렵, 엄마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일을 마치고 집 앞 횡단보도 앞에 서 있던 엄마를 큰 오토바이가 덮쳤다.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내내 제발 많이 다치지 않기를 무사하기를 하나님께 기도 했었다.

119에 실려 응급실로 간 엄마는 눈도 뜨지 못하고 다리는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앞이 캄캄 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간병이 걱정되었다.

물론 오빠도 있고, 언니도 있지만 엄마는 나를 제일 편한 자식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우리 집에 모셔야만 할 것 같았다.

좁은 집에 엄마를 모시자고 하면 남편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도 되었다.

대수술을 받은 엄마는 이년 동안을 병원에 계셨는데 걷지 조차 못하셨다. 딸도 자식이고 엄마가 그 지경인데 망설일 수만은 없었다.

남편은 내 이런 마음을 알았는지 어머니를 우리 집으로 모시자고 했다.

우리집에 계시는 동안 주무르기 등 물리치료를 열심히 해 드렸다.

일 년이 조금 지났을까. 엄마는 겨우 목발을 짚고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십 여 년을 바깥출입을 못하셨는데 이제는 버스에도 잘 오르내리신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들깨 밭에 추수까지 하러 오신 것이다.

웬만해서는 외출을 안 하시는 분인데 농사일이 왕초보인 딸의 일손을 도와주러 온 것이다.

엄마와 나는 남편이 날라다주는 들깨를 탁탁 털기 시작했다.

보물 같은 알이 와르르 소리를 내며 쏟아진다. 신기하다.

한참 동안 들깨 터는 재미에 폭 빠져있던 나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골 깊은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다시는 이런 외출을 못할 줄 알았는데 들깨 추수까지 거들어 주시다니 고맙기 그지없다.

몇 년 뒤에는 이 밭에 포도를 심을 텐데 그때도 포도 수학을 엄마가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다.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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