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지만 희망이 있는 나라 러시아
예술의 산실 모스크바,예술적 감흥 빚어내
제67차 국제 펜대회 반숙자 수필가 참석

10월이면 겨울이 시작되어 이듬해 4월 중순에야 봄이 온다는 동토의 나라, 얼마전까지만 해도 세계를 이끌어가는 4대 강국중의 하나였지만 공산주의 국가라는 이유로 우리는 그곳을 철의 장막이라 불렀던 먼 나라였다.
그럼에도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도스또엡스키나 톨스토이, 고골리 등 수 많은 작가들이 준 감동을 간직하고 있다.
그곳에서 제67차 국제 펜대회가 열렸다. 모스크바 슬라비키안 호텔, 이번 대회의 주제는 비평의 자유로 아직도 작품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러시아의 현실을 잘 번영해 주었다. 전야제로 만남의 시간을 가졌는데 세계 각국의 회원들 사이에 우리나라 전숙희 전 회장과 한복차림의 조경희 전 문화부장관은 한국팬의 위상을 높여주고 빛내주었다. 원로가 왜 필요한지를 절실히 느낀 시간이었다.
다음날 개회식에 이어 주제발표는 우리 팬에서는 윤병로 부회장과 이태동 교수가 하기로 하고 우리 회원들은 모스크바 문화유적과 문학가의 생가와 박물관을 찾아 예술적 감흥에 젖었다.
지난 5월7일 푸친 새 대통령을 맞은 러시아는 인구 약 1억5천만명의 거대국가이고 동슬라브족으로 1917년 10월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 국가로 굳건한 자리를 구가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정책 실패로 1986년 고르바초프는 경제,사회개혁정책을 추진했으나 실패하고 국민의 직접선거로 당선한 보리스 엘친 초대 대통령을 거쳐 푸친 새 대통령을 선출하였다. 그러나 경제적 후진성과 사회적 문제가 산적해서 새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가 어느때보다도 크게 느껴졌다.
비행기로 10시간을 날아간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국토를 가지고 동서 두지점 사이에 11개의 시간대를 사용하며 총면적은 17,075,400km2로 우리나라의 77배, 미국의 1.8배다. 모스크바 세레매치예보 2공항 상공에서 내려다 본 광활한 땅은 복닥거리며 사는 우리에게 설레임을 주기에 충분했다.
공항은 국제공항이라 하기엔 작고 초라하며 직원들의 표정 또한 무표정 했다. 화장실은 녹물이 흘러 불결했다. 그러나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며 뾰족한 첨탑의 스탈린 양식의 건물들과 함께 도시가 신선한 색채로 다가왔다.
도시는 숲과 녹지로 둘러 쌓여 있다. 어디를 보아도 숲이 있고 숲 사이사이 연못 같은 호수가 있어 사람들이 숲길을 걷는다.
5월 하순인데도 가죽점퍼를 입었거나 버버리를 걸치고 덩치가 사람만한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러시아 사람들은 걷기를 좋아하는 민족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버스가 서면 한 손에 비닐 백을 든 사람들이 정류장에서 먼 아파트를 향하여 서둘지도 않고 대화도 하지 않은 채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걸어간다. 보드카를 즐기고 예술을 사랑하는 피가 뜨거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은 서민들과는 거리가 있는 것인가.
그들의 모습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서 낡은 아파트를 보며 경제부흥은 뒷전에 두고 군사부분에만 막대한 예산을 지출한 결과임을 감지하였다. 아무튼 러시아는 혁명에서 출발하여 혁명으로 끝나는 나라가 아닌가 싶었다.

<크레믈린과 붉은 광장>

크레믈린은 모스크바의 심장부로 러시아의 역사를 지켜온 성벽이다. 러시아어로 요새를 의미하는 크레믈린 안에는 15세기의 장대한 교회에서부터 현대적인 의회까지 다양한 건물이 있다.
또한 레닌,스탈린,흐루시초프,보르즈미프와 고르바초프가 여기서 서기장으로 일했고 푸친 대통령 취임식도 크레믈린 궁에서 가졌다. 성벽의 망루는 2천2백35m에 이르고 벽 위에는 총구와 적당한 간격을 두고 20개의 망루가 세워져 있다.
스파스카야 탑에는 크레믈린이 요새로서의 의의를 상실하기 시작한 17세기 초기에 설치된 시계가 걸려 있다. 지금도 정확한 시간을 가리키고 있는데 크레믈린 성벽 안에 있는 레닌 묘의 위병 교대는 이 시계에서 울리는 종소리에 맞추어 1시간마다 거행된다. 우리가 그곳에 있는 동안에 종소리가 울렸고 총을 메고 뻣뻣한 걸음걸이로 하는 교대식을 보았다.
러시아에는 광장이 많다.
극장광장, 혁명광장 등.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붉은 광장이다. 나는 러시아에 가기 전에 붉은 광장이라는 단어에 이상한 거부감을 가졌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광장에서 죽어갔으면 이름을 붉은 광장이라 하는가.
붉은 광장은 국립 역사 박물관과 금 백화점 및 양파머리 모양의 바실리 사원에 둘러싸여 있는데 전에는 시내 중심부에 있던 시장이었다. 끄라스느이 블로샤지, 즉 ‘붉은’으로 해석되는 이 광장의 고대 러시아로는 ‘아름다운,이쁜’이라는 뜻으로 본 의미는 ‘아름다운 광장’이었으나, 많은 이들이 메이 데이와 혁명 기념일에 붉은 색의 현수막을 건물 벽에 걸고 사람들도 붉은 깃발을 손에 들고 있어서 광장이 온통 붉은 색이 되었다는데서 연유한다.
그러나 붉은 광장이 더 의미 깊게 다가선 것은 이 광장을 밟고 지나간 인물들 때문이다. 역사의 일익을 담당했던 사람중에 영웅 미닌과 포자르스키, 이들은 민중의 힘을 응집시켜 1612년 폴란드군을 격퇴하고 모스크바를 해방시켰다. 지금은 바실리 사원 앞에 동상으로 섰지만 위기에서 민중을 해방시킨 공적은 러시아와 함께 살아 있을 것이다.
또 한 사람은 우리가 어렸을 때 노래로 불렀던 스텐카 라진의 이야기다.
스텐카 라진은 카자흐의 수장이었다. 1667년 볼가강 하류 지방에서 농민반란을 지도하다가 71년 정부군에 패하여 붉은 광장에서 처형당했다.
관광객들이 눈을 빛내는 광장에서 나는 지금은 가사도 다 기억나지 않는 ‘스텐가 라진의 배에서는 노래소리 드높다’하는 노래를 응얼거리다 보니 사람들은 모두 바실리 사원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느 시대건, 어느 나라건, 역사적인 인물들은 있다. 그들로 인하여 국가는 발전되고 후세의 나갈 길을 밝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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