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숙

난 산 오르는 것을 참 두려워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한 달에 두세 번씩 등산을 했었지만 결혼을 한 후 처음으로 덕유산을 올랐을 때 나의 온 몸은 풍선처럼 부어있었다. 그 뒤로도 몇 번 산행을 시도해 봤지만 그때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중도에 포기를 하곤 했다. 며칠 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MBC여성강좌에서 산행을 한다는 데 같이 가지 않을래?”

“그려 가볼까?”

대답을 할 때까지도 자신은 없었지만 다이어트로 18kg정도를 감량했기에 다시 한 번 시도를 해 보고 싶어졌다.

산행이 예정된 아침은 엄청 바빴다. 충주체육관 앞에서 아침 일곱 시 출발이라 하니 집에서는 여섯시에는 나가야 한다. 등산화화와 사놓고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지팡이를 챙기고 옷을 찾아보니 산에 입고 갈 마땅한 점퍼가 보이질 않는다. 등산을 한지 너무 오래되었으니 등산점퍼가 있을 리 만무하다. 대충 트레이닝 점퍼를 찾아 입고 친구를 만나러 집 앞에 있는 상가 앞으로 나갔다.

친구와 충주에 도착해보니 대형버스가 네 대나 서 있다. 친구와 나에게 배정된 차는 3호차였으나 4호차가 사람이 많지 않다 하여 4호차로 옮겨 앉았다. 중간 자리에 우린 나란히 앉았다. 수학여행갈때의 기분이 나는 듯 했다. 어른이 되고나서 관광버스를 타면 언제나 음주가무 때문에 여행다운 기분을 느끼질 못했었는데, 다행히 방송국에서 주최하는 것이라 가무를 안한단다.

버스에서 내다보는 바깥풍경이 기분을 새롭게 하고, 작은 나라지만 지역마다 느껴지는 계절의 변화에 다시 한 번 감동을 했다. 충청도엔 아직 봄이 오는 중인데 아랫녘으로 내려갈수록 봄꽃이 완연한 봄을 느끼게 해준다.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우릴 내려놓은 곳은 내변산 입구이다.

가벼운 준비운동을 한 후 산행은 시작되었다. 안내하시는 분은 신행에 자신 없는 사람은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갈 것을 권했다. 버스로 목적지를 가는 풍경도 괜찮다며, 중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을 꼬드겼다. 산행은 한번 시작하면 돌아와도 버스가 없단다. 산을 넘어 가는 중에 버스는 맞은편에 가서 기다린다고 한다. 순간 내가 정상을 넘어갈 수 있을지 망설여졌다. 용기를 냈다. 20여년 만에 가는 산행이지만 살도 뺐으니 다시 도전을 해보고 싶은 도전의식이 생긴 것이다.

올라가는 길에 뒤따라오던 친구가 한마디 했다. “자기 발뒤꿈치를 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네. 아이 둘을 아주 훌륭하게 잘 키우신 분에게 그 비결을 물었더니,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산엘 올라갔었대. 산을 올라갈 때 그 분은 아이들에게 항상 아빠 발뒤꿈치만 보고 올라오라고 하셨대. 그 아이들은 크면서 항상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의 발뒤꿈치만 보면서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서 컸다고 하드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큰 깨달음을 얻었다. 한순간에 너무 멀리 보려고 하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오르막을 갈 때면 멀리 보지 않고 앞사람의 발뒤꿈치만 보고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평지가 나오는 것이었다.

우리 인생도 이렇지 않을까 싶다.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이루려고 하면 힘이 들지만 한 발짝 한 발짝 가다보면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을 까 싶다. 친구와의 산행 길에 산을 편하게 오를 수 있는 방법을 알았고,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서두르지 않을 수 있는 여유를 배워가는 것 같다.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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